10화 빨간 샌달의 추억
조암리로 들어오는 버스에서 내리자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읍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걷다 보니 곧 깜깜해져 버렸다.
내 작은 키에서 내려다보여야 할 흙바닥도, 걸음을 옮기는 발 끝도 보이지 않았다. 삼촌과 둘이 나란히 걷는 소리만, 서로의 기척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띄엄띄엄 작은 불빛만 몇 개 멀리 보였다.
낯선 벌레 소리, 저녁에 나는 풀 냄새...
어린 내가 안 됐던지 막내 삼촌이 날 둘러업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으니 아마 삼촌은 당시 고등학생쯤 됐을 거다. 업히면서 신고 있던 빨간색 여름 샌달 끈에 달린 똑딱이 단추가 풀렸었는지 아까부터 샌달은 내 발가락 끝에 걸쳐진 채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발가락에 힘을 빡 주고 샌달이 떨어지지 않게 버티고 있었다.
견디다 견디다, “삼촌, 신발 떨어져... 떨어질 것 같아, 떨어진다고!!! 잠깐 서봐... 샌달 떨어졌어...”
“어? 어? 뭐! 신발이 왜 떨어져?”
삼촌이 날 내려놓고 허둥댔다.
“어디서 떨어졌는데?” 삼촌은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이리저리 찾느라 분주했지만, 정말이지 너무 깜깜했다.
“야, 안 되겠다, 내일 아침에 와서 다시 보자. 어두워서 못 찾겠어...”
난 몹시 안타까웠다. 여름 끝무렵 엄마가 할머니네 가라고 사준 신발이었다. ‘못 찾으면 어쩌지...’
다시 업혔고 얼마 안 남은 거리에 있는 할머니집에 금방 도착했다.
할머니가 대청마루를 서둘러 내려와 활짝 웃으시면서 나를 반기셨다.
들어와서는 뭐 할 것도 없이 잠자리에 바로 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얼른 조르르 나왔다.
네모 반듯한 대청마루 위에 서서 보니 처음 본 광경이 내 눈앞에 있었다.
바로 꽃들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동그랗게 돌담을 둘러 내 키만큼 쌓아 올린, 크지도 작지도 않게 꾸며놓은 정원 속에는 키 작은 꽃들부터 프라이팬만 한 해바라기까지, 다채롭게 핀 꽃들이 가득했다.
빽빽하게 꽃이 피어있는 작은 숲 같았다.
진짜 이뻤다. 어린 내 눈으로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지난밤 어두워서 못 본 마당 풍경이었다.
우~와! 입을 벌리고 눈을 커다랗게 떠 보이자 부엌에서 나와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고는 할머니가 깔깔깔 웃으셨다. “이렇게 꽃 많은 거 처음 보는구나, 그렇지? 호호호...”
할머니는 꽃을 잘 가꾸셨다.
별 볼 일 없는 풀 한 포기도 잎을 풍성하고 윤기 있게 길러 놓으셨다. 다 말라가는 꽃도 잘 달래어 다시 살려내셨다.
수년 후에 정봉이 삼촌이 당산동에
암소갈비전문식당을 개업하자 할머니가 잠시 머무르셨었는데 어쩌다 가게에 기어들어온, 누워서 숨 할딱 거리며 죽어가던... 어미 떨어진 새끼 강아지도 당신의 입으로 밥을 오물오물 짓이겨 먹여서 결국은 살려놓으셨다.
그런 사람이 있다, 고 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손대면 잘 크는... 하지만 난 반대다.
손 많이 안 간다는 갖가지 화분을 다 사들여 봤지만 얼마 못 가서 다 말라비틀어졌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엄마는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늘려가며 십수 년을 넘게 키워댔다. 3년마다 한번 꽃이 핀다는 난 화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사를 가서도 3번까지 꽃피우는 것을 직접 보았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싱싱하게 자라는 화초들을 보고 “네 어미가 이런 재주는 하나 날 닮았어...” 하시며 흐뭇해하시곤 했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80년도에 컬러티비가 나오자 아빠가 새로 티비를 들여놓았다. 그전에 흑백 티비에서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 광고를 보면 화면 속에는 늘 꽃밭이 쫘악 펼쳐져 있었는데 그 화려한 색을 그때서야 제대로 보았다.
노랗고 빨갛고 울긋불긋한 꽃이 가득한 자연농원 광고가 나올 때마다 난 어릴 적 할머니집 동그란 화단에서 봤던 꽃들이 떠올랐다.
아무튼 어린 시절 그날 아침, 감탄하며 바라보던 꽃들 너머로 계단 위를 올라와 대문을 막 들어서는 막내삼촌이 보였다.
“야. **야, 삼촌이 가봤는데 신발이 없다... 어디로 없어졌는지 길 옆 밭고랑까지 싹 다 둘러봤는데 암만 찾아도 없어, 어쩌냐...”
고개를 숙이자 대청마루밑에 덩그러니 짝을 잃은 샌달 한 짝이 보였다.
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당시 엄마는 조암 본가에 다니러 내려가는 막내 삼촌 손에 나를 들려 보냈다.
엄마는 아직 우리 집이 없던 시절,
이사를 다닐 때마다 공주 외갓집에, 또 조암 할머니집에, 날 몇 번씩 떨어트려 놨었는데
그 외로운 경험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내 불안장애의 시작은 어린 시절, 여기부터였다.
주인집에다가 세 드는 집 식구 수를 줄이려고, 그래서 그랬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래봐야 오빠, 나, 두 남매가 전부인데... 주인집에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이사 끝나면 데려와 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게 또 통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생쯤 커서 어느 날 서운함을 얘기했더니 엄마가 그랬다. “네가 엄마를 좀 밝혔어야지, 맨날 엄마 옆에만 매달려서 떨어지질 않았어...
조암 가서 명절 때도 일해야 하는데 네가 하도 울어서 업고 음식하고 그랬다... 떼놓으면 나아질 줄 알았지... 이사도 이사지만...”
내 곁을, 내 발을 떠난 샌달 한 짝을 잊을 수 없었던 난 나머지 샌달 한 짝을, 어디서 났는지 모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 마루 밑에 단단히 잘 뒀다.
꼭 다시 찾을 것만 같은 샌달 한 짝에 미련을 못 버리고 밤만 되면 할머니가 풀 먹여놓은 베갯잎에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려놓았다.
그날 깜깜한 밤, 내 발에서 떨어져 여적 길바닥에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신발 한 짝이 불쌍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사흘이나 지났을까, 솟을대문 옆 감나무엔 아직 단단한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할머니는 호호호, 웃으시면서 말했다. “아직 떫어서 못 먹어, 더 익으면 따줄게. 기다리거라, 알았지?”
내 눈엔 색깔만 고왔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러고 있는데 세네 명 정도 되나 싶은 동네 아이들이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할머니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다 고만 고만한, 그중 제일 키 큰 아이가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감을 두 개 따서 내려왔다. 내가 “이거 우리 할머니가 못 먹는댔어.” 했더니 그 아이는 “그래?” 그러고 한마디 내뱉고는 획 뒤돌아 가버렸다.
근데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감 하나를 쑥 내밀었다. “이건 안 떫어, 한번 먹어봐라.” 했다.
난 주는 대로 선선히 받아서 그 자리에서 단물을 입에 묻혀가며 감 하나를 다 먹어버렸다.
아이들이 다시 몰려 떠나고 좀 전에 따서 주고 간 감 두 개를 손에 쥐고 마당에 서있었는데 일하시며 왔다 갔다 하시던 할머니가 날 보고는 “얘들이 따줬어? 아직 못 먹는다니까, 먹고 싶었구나.” 호호호 웃으시더니 감 두 개를 사랑방옆 기와 담장 위에 올려놓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뒀다가 익으면 그때 먹어.”
담장 위에 나란히 놓였던 감 두 개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그 장면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때의 쨍했던 햇빛... 파란 하늘, 그 밑에 주황빛으로 익어가던 감 두 알...
그 뒤로부터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할 일없이 마을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그중 나랑 동갑이지 않았을까 싶었던 남자아이한테 잃어버린 나의 샌달 한 짝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심심했던 난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마루 밑에 내가 숨겨놓은 물건이 있어...”
“그게 뭔데? ” “어, 근데 말하면 안 돼, 내가 하루에 한 번씩 꺼내보고 도로 잘 두는데...
아무도 몰라, 할머니가 버리라고 그랬거든.”
눈이 동그래진 아이가 계속 묻고, 그러면 난 또 모를 답을 해주고... 결국 스무고개가 돼버렸다.
“색깔은 빨간색이야, 그리고 밤마다 울어...”
그 뒤로 그 아이와 수수께끼 푸는 듯한 대화를 볼 때마다 한 번쯤은 나눴고 드디어 서울집에 갈 때가 왔다. 하루 앞두고 잠자리에 누워서 난 결심을 했다.
숨겨놨던 샌달 한 짝을 버리고 가기로.
아침을 먹고 스무고개를 아직 못 마친 그 아이를 불러내었다.
할머니집 부엌 뒷문을 나오면 작은 마당에 돌배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배나무 뒤 담장 너머 소나무숲으로 그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곳은 낮에도 살짝 침침했던 우거진숲이었는데 나중에 커서 그곳을 가보니 나지막한 야산이었고 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나무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어린 나에게만 숲으로 보였던 건지...
“이제 그만 이걸 버릴 거야... ” 남자아이는 도대체 그 물건이 뭔지 계속 궁금해왔던 터라 호기심을 잔뜩 품고 내 손에 든걸 빤히 쳐다봤다. 내가 돌돌 말려진 신문지를 펴자 “엥? 신발이잖아?” 하며 어이없어했다. 무슨 살아있는 작은 괴물이라도 내가 숨겨놓은 줄 알았던 모양이다. 보자마자 여자아이 작은 샌달인걸 알고 하찮아했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해 둔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한 손에 쥐고 있던 샌달을 멀리 던져버렸다. 던져봤자 얼마나 날아갔을까 싶지만... “안녕! 잘 가!... 또 올게, 거기 잘 있어...”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고 한결 개운해져서는 뒤돌아 산을 내려왔다.
조암 할머니집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 후 여름 방학 때 내려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할머니는 서울로 와 지내셨고 그 집은 다 허물어지고 밭이 되었다.
한 마을 사람에게 농사를 짓도록 빌려주었고 얼마간의 돈을 받았다.
여름 방학 때 할머니집에서 아침밥을 다 먹은 후 스탠 밥그릇에 우물물을 부어 마시면 나던 맛이 생각난다. 찌릿하면서 나는 쇠 맛...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 뒷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들고 여기저기 뒤적거리고 다녔다. 이쯤이었을 텐데... 왜 안 보이지... 한참을 찾아봐도 결국은 못 찾고 내려왔다.
그렇게 그곳에 내다 버린 나의 남은 샌달 한 짝... 그까짓 신발 한 짝 가지고 소설 쓰고 앉아있네, 할지도 모르지만...
신혼 초, 톰 행크스가 주연한 캐스트 어웨이를 dvd로 빌려다 보았다.
~섬을 탈출하기 위해 주인공은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긴 항해에 나선다. 어느 날 긴긴밤 내내 몰아친 폭풍우가 끝나고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 척(톰 행크스)은 수년간 동고동락했던 윌슨(배구공)을 그만 눈앞에서 놓친다.
윌~슨! 윌슨! 척은 다급하게 외친다. 하지만 점점 멀어졌고 눈앞에서 윌슨이 완전히 사라지자 목놓아 대성통곡을 한다~
난 그 장면을 보면서 엉엉 울었다. 볼 때마다 우는 영화 장면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내 속을 확 꼬집어 울리는 대목은 짧거나, 아님 한 개면 충분하다.
내가 빨간 샌달을 훌쩍 던져 버리고 온 지 30년쯤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리고 그곳에 묻히셨다.
살아계셨을 때 당신이 태어났던 집 담장 너머에 묻힐 거라고 상상이나 한번 해보셨을까?
아빠 묘 앞마당과 봉분 뒤 토담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들을 포클레인으로 다 뽑어버리자 뻘 건 흙이 드러났다.
할머니가, 할머니 시어머니와 함께 밤새 떨며 들으셨던... 일정 시대 때 뒷산에서 밤마다 났다던... 도끼로 소나무를 내리치는 소리가...
포클레인으로 찍어 긁어 올리는... 나무뿌리들이 서로 엉켜 뽑히는 소리와... 같이 한데 엉기는 것 같아서... 그 소리들을 들으며 난 생채기가 난 것처럼 가슴이 쓰라렸다. 빨간 샌달 한 짝의 추억에 할머니와 아빠가 모두 등장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