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상이고, 너는 나다.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어린이들도 본능적으로 생의 유한함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야 너도 나도, 모두가 알고 있지요. 하지만 죽음은 대체로 두려운 일이라 애써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여전히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는 합니다. 깊은 우울증으로 수십 년의 시간을 살면서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소심하게나마 자살 시도를 하며 살아왔음에도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두려워지고는 합니다. 죽음을 갈망하는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니요, 우습죠. 어쩌면 제 인생이라는 게 한 편의 블랙 코미디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을 떠올릴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는 상태에 그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할 것입니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에 관해 애써 무관심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혹은 무지하기 때문에 더욱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 테고요. 대체로 낯선 대상을 접하면 불편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지만, 그 대상을 이해하게 되면 불편한 마음이나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는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죽음을 멀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접한다면 우리의 관심만큼의 두려움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과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의 생에 집착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인이 아닌 이상 100% 모든 집착을 덜어낼 방법은 찾지 못하겠지만,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를 평생 힘들게 한 우울증이라는 증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제 스스로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려고만 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집착이 스스로를 더 고통스럽게 이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집착은 고통을 수반하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날들이었습니다. 30일 중 2일, 3일을 제외한 날들을 매 순간 무너지는 마음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살 길을 찾고 싶었고, 그리하였습니다. 걸을 에너지가 있으면 걸으려고 했고, 온갖 명상이란 명상은 다 찾아 해보았고, 별의별 취미를 만들어 대면서 악착같이 사는 것처럼 살고자 애썼습니다. 결국엔 신경정신과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고서야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칼 마르크스가 말했다지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요. 정말 종교는 때때로 인민의 아편이 되기도 합니다.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종교는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가,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하고, 종교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교회든, 성당이든, 법당이든, 어디든 좋으니 어디든 찾아갈 곳이 있고, 내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성인이 있으면 참 좋았으련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무신론자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무신론자이니만큼 저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신”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선각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제 생의 유일한 멘토입니다. 사실 불교라는 종교 자체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내 불교문화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부처님은 머무는 마음 없이 마음을 내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스님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겠다는 분들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 게 맞잖아요. 기복 신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도들의 무지를 방관하는 것을 넘어 그를 이용해 “49재”니, “수능 100일 기도회”니 하는 것들을 통해 돈벌이나 하고 있으면 어찌합니까.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 했던 부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이 더 크고 화려한 금불상을 제작하기 위해 신도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일은 대체 언제쯤 중단하는 것입니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고통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언제 알려주실 겁니까. 한국의 불교문화는 이러하지만 그들이 모시는 부처님으로부터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부처님 덕분에 사후 세계 그리고 현생의 작동 원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죽을 것이고, 매장이든 화장이든 하여 흙, 공기, 바람, 구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흙이 된 저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생명체들의 양식이 될 것이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 온천지로 흩어질 것입니다. 생명체들 중 일부는 크고 굵은 나무 옆을 지나다 그 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에 눌려 사망하고, 나무는 사망한 생명체들을 일용할 양식으로 취할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 나무는 베어질 것이고, 누군가의 책상이 될 것입니다. 그 나무가 사과 열매를 맺는 나무였다면 사과가 되었겠지요. 그리고 사람인 누군가의 사과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죽어 흙으로, 셀 수 없이 다양한 작은 생명체들로, 나무로, 책상으로, 사과로 그리고 당신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으로부터 머무는 마음 없이 마음을 내어 지금 이 순간을,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직 할 뿐이라는 마음으로 오직 살 뿐인 방법 말입니다. 물론 아직, 어쩌면 영원히 체화하지 못할 일이겠지만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과거의 일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까지 모든 것에 일일이 마음을 머물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아빠를 끊임없이 소환해 원망하면서 스스로를 고통 속에 머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떼어내려고 무수하게 노력해 왔지만 별 수 없었던 무기력과 우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품고 싶습니다. 나이 들어 내게 찾아온 각종 건강상의 변화와 질병들을 두려움 없이 겪어 나가는 용기를 발휘하며 살고 싶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죽지 않고 살게 된다면 그저 늙고, 할머니가 되고, 죽어, 언제나처럼 우주의 일부로 다시 살아나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희망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순간순간, 하루하루, 다람쥐처럼, 하루살이처럼, 우울한 나답게 살다 잘 떠나겠습니다.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삐딱하고, 어두운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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