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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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의 인기가 높습니다. 저도 관심이 많은데요, 저는 에니어그램(Enneagram)에도 큰 관심이 있습니다. MBTI에서는 성격 유형을 16개로 나누고 있고, 에니어그램에서는 9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을 16개 혹은 9개 유형으로 단순하게 분류해 설명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저는 이게 또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이 성격 분류의 목적이 차이를 가진 자들을 차별하기 위함이 아닌 만큼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이를 이용해 "쟤는 이거래. 역시 나랑 안 맞아"라며 속단해 버리거나 "검사 결과를 보니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네요"라며 입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성격유형 검사는 나와 남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나와 그리고 남과 더 잘 지낼 수 있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MBTI도, 에니어그램도 종국에는 통합이 목표일 겁니다. 나와 다른 이들의 성격이 갖는 강점과 약점을 알아 나에게 알맞게 수용하는 것이지요. 결국, 모든 유형의 성격이 가지는 장점들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두면 좋겠지요. MBTI나 에니어그램을 좋아하는 분들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저의 성격 유형의 소개할까 합니다. 저의 MBTI는 ENTJ이고, 에니어그램은 8번 유형입니다.


제가 속한 성격 유형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 또한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면 명확한 바운더리를 두고는 했습니다. “두고는 했다”라고 표현하니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정확하게 표현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바운더리를 두었고, 그게 좋았습니다. 현재 역시 분명 그 바운더리가 있을 텐데요, 아예 없애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흐릿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통합을 목표로 노력을 해 볼 생각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 머릿속에는 친구에 관한 순위와 바운더리가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친구면 친구인 것인데, 저는 친구를 두고도 중요한 친구와 덜 중요한 친구 등으로 순위를 매기고, 같은 순위의 친구들을 묶어 하나의 바운더리 안에 놓았습니다. 아, 글로 이렇게 고백을 하자니 정말 부끄럽네요. 순위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첫 번째 기준은 ‘얼마나 자주 교류하는가’이고, 두 번째 기준은 ‘대화가 되는가’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두 번째 기준은 충족되지 않았으니 첫 번째 기준이 사실상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자주 생각했습니다. ‘왜 충족되지 않는 걸까?’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화가 되는가’라는 질문은 제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타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질문이 아닌, 오로지 내 기준에서 타인에게 요구하는 내용이었던 것이지요. “대화”란 무엇인가를 두고도 백만 가지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대화”일 수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대화”인 경우입니다. 예전에 제가 친구 싱글인 친구 두 명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요. 소개팅 자리를 주선하여 동석을 하였는데요, 그 둘을 소개해 주면서 한 가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A는 정말 모든 대화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 모든 이야기 주제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비상한 능력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만일 제가 “나는 요새 이런 게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을 하면 A는 “야,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힘들면 더 힘들지, 네가 뭐가 힘드냐?”라고 말을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B도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그런 둘을 소개해 주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걱정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둘은 마주 보고 앉았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역시 제가 우려했던 장면들이 이어지더라고요. 그들과 1시간 정도 같이 있었는데요, 1시간 내내 A와 B는 자기 얘기만 하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소개팅도 실패구나’라고요. 그런데 웬일인가요! 다음 날 그 둘에게 연락을 해서 만남이 어땠는지 물었더니 둘 다 매우 만족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이 그리도 만족스러운지 이유를 물었더니 하는 말이 “말이 정말 잘 통하더라"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들은 그렇게 만나 사귀었고, 꽤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 갔습니다. 뭐, 이런 식인 거죠. 제가 보기에는 “대화”가 아닌 것이 다른 누군가들에게는 “대화”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대화”는 결단코 제가 원하는 “대화”가 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통합형 인간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부분은 포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화”에 너무 집착을 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친구 혹은 친구들과 제가 원하는 방식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려놓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기준으로만 친구의 바운더리를 구성했겠지요. 그저 저는 “대화”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작은 소망을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매우 필요합니다. “듣는 귀”와 “진심을 담은 리액션”입니다.


저는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해당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를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집중하며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이나 자세하게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해야 하고요.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않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맥락과 무관하게 자꾸만 “나의 이야기”로 가져와 떠들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나는 이번에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고”라 말하면 “아이고, 그랬구나. 어떤 면이 제일 힘이 들든?”이라고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야지, “야, 말도 마. 나는 이게 그렇게 힘들더라"라며 자기 말만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꺼낸 소재와 주제에 충분히 집중을 하면서 대화를 진행하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즈음에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대화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리액션”이 필요한데요, 그냥 대충 듣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개만 간신히 끄덕인다거나 과도하게 끄덕이는 것 모두 매우 부적절한 반응입니다. 그 둘 다 “가짜 마음을 담은 리액션”일뿐이죠. 중간중간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진심을 담은 리액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파트너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전제되어야 하고요.


“진심을 담은 리액션”과 “적절한 리액션”은 다릅니다. “진심을 담은 리액션”이 언제나 “적절한 리액션”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자주 저지르는 잘못인데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제 MBTI가 ENTJ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여기에서 “T”는 과정보다는 결론을 중시하는 사고 유형을 뜻한답니다. 이것과 차이를 갖는 유형이 “F”인데요, “F”는 감정 유형으로 결론보다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만일 제가 “F”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경우에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편입니다.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는 초집중을 해서 정말 잘 듣고 묻고 하는데 친구가 공감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거나 못 해서 친구를 돕기는커녕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앞으로 제가 통합형 인간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 매우 보충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저의 “T스러운 리액션”이 “F”인 친구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저의 리액션이 “진심을 담지 않은 리액션”인 것은 아닙니다. “진심을 담은 리액션”임은 분명하지만, 친구의 마음에 안 드는 리액션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반성하겠습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밝고 즐거운 “대화”도 있지만 어둡고 무거운 “대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어둡고 무겁고 우울하고 힘든 이야기를 듣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잘 듣지 않고, 더 묻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밝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나누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옥과도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 굳이 여기가 지옥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내어 스스로 괴롭게 만들 이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살아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밝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일관성 있게, 마치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것은 존재하지 않다는 듯 밝고 즐겁기만 한 것도 참 안된 일입니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대하고, 겪으면서만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불가능합니다. 그건 현실이, 사실이 아니니까요. 건강하고 밝은 친구들만 사귈 수는 없습니다. 늘 건강하고 밝기만 했던 친구도 어떤 계기를 통해 불건강하고 우울해하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늘, 시종일관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사람도 친구로 두는 게 맞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필요하다면 거리를 두고,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저는 균형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은 그 사람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관심과 애정은 귀가 열리도록 할 것이고, 거짓이 아닌 진심의 리액션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관심과 애정은 밝고 행복한 것들로만 향하지 않습니다. 대상은 밝고 행복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고, 이 세상과 세상살이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어려운 사정을 “잘” 들어 줄 친구와 친구들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일, 모두가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진 채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땠을까요? 그런 세상에서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상담가들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귀가 열리고 열려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상담가들이 실업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ENTJ답게, 8유형답게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할게요. 그.런.날.은.오.지.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래요. 그런 날은 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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