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이기주의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자란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자들이라고 하겠고요. “이기주의자”라는 말이 보통 “쟤는 이기주의자야!”라고 비난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기주의”나 “이기주의자”는 좋은 뉘앙스를 가진 낱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비난하는 자신은 마치 이기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그런 말을 내던지고는 합니다만, 그럴 리 없습니다.
이기심이 가득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기주의자라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누가 봐도 이기주의자가 분명한 그들의 마음이 100% 이기심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평가를 받는 그들도 종종 이타심을 발휘합니다. 그의 긴 인생에 그런 순간이 왜 없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대체로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면 오로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들”이라고 쓰고 있습니다만, 그들은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언제든 “그들”이 되고는 맙니다. 이기심을 내어 이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과 사고는 사실 우리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든 대화의 화제를 자신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우는 사람들, 그저 대화의 기술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순간의 문제일지라도 그들은 그 대화의 장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운전하는 자신의 차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 인도 위를 걷는 노인이 쓰러져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 등이 떠오릅니다만, 이런 예들은 우리들의 일상에 널려 있습니다. 언론의 사건 사고 관련 기사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차별, 괴롭힘, 학대, 추행, 강간, 절도, 강도, 협박, 살해 등의 악행 역시 오로지 자신만의 입장만을 고려하고, 타인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해하는 이기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기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그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고, 그 집단은 매우 이기적인 성격의 집단이 됩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는 같은 통로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며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 집값이 떨어질까 두렵다며 요양원/요양병원/화장 시설/장애인 시설의 건립을 결사반대하는 사람들도 전국에 깔려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도 있어요. 어떤 아파트의 주민들이 건너편에 있는 요양원의 창문을 가림막 등으로 가려 달라고 했답니다. 노인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기 싫다나요. 아주 꼴값을 제대로 떨고 있습니다. 천박합니다. 동물을 완벽하게 타자화하여 취하고, 자연의 안녕을 고려하기는커녕 파괴만 일삼는 것,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무관심하고 나아가 악마화하는 것 역시도 집단 이기주의의 증거들입니다. 결국, 경제적인 차원에서든 정신적인 차원에서든 내가 손해 볼 언행은 삼가겠다는 마음이 이기심이고, 그런 사람들 모두가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인간은 이기심 덩어리"라 답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기심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마치 인간의 방어기제 작동 능력에 순기능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라는 마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마음이고, 이기적인 행동은 나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매우 필요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가끔 이타심으로만 가득한 사람들을 보기도 하는데요, 이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무엇이든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기심을 적절하게 발휘하는 것도 능력이고, 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조건적인 이타심이 그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처럼 덮어놓고 발휘하는 혹은 발휘되는 이기심 또한 결국 돌고 돌아 그 개인을 병들게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주제 파악은 하고 살자는 얘깁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인지에 관한 인식만큼은 명확하게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잘” 이해하면서 살아보자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이기적인 것일까요?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왔는데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 인성이 악해서라고요.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인성이라고 합니다. 인성에 관한 세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입니다. 성선설은 하늘이 인간에게 선함과 윤리적인 성품을 내려 주었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 그게 기본값이라는 것이죠. 성악설은 그 반대입니다. 날 때부터 인간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인간도 선해질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악이 기본값이고 선은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거란 겁니다. 성무선악설은 인성은 본래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다는 설입니다. 인성을 백지상태로 보아야 하며, 백지 위에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인성의 빛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성무선악설은 극단적이지 않은, 통합적인 사고로 매우 무난한 학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마음은 끊임없이 성악설 쪽으로 기울어 왔습니다. 기사화되는 “미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저는 사실 그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기사들 있잖아요. 힘겹게 횡단보도 위를 걸어가는 노인을 돕는 청년의 모습,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의 뜻으로 박카스를 선물한 사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요. 걷기 힘들어하는 노인에게 다가 도움을 드려도 괜찮을지 여쭌 다음 좋다고 하시면 도움을 드리는 것,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왜 “미담”씩이나 된단 말입니까. 이게 바로 현재 우리 사회의 “미담의 수준”이란 것이고요. 이게 바로 우리, 인간들의 수준인 것입니다.
규칙이나 법 이야기를 빼놓을 수도 없지요. 도덕이니 규칙이니 법이니 하는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이 지배하는 사회에 적당한 수준의 규범 말고 이런 것들의 강조, 제도들이 과연 필요할까요? 이런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대체로 인간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제와 통제와 처벌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아수라장 하면 이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어떤 규칙이나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약탈, 방화, 살해 말입니다. 통상 폭동이 극한 달하는 시점, 그 무엇도 그들을 강제할 수 없는 순간에 그 공간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정신적, 정서적, 경제적 사기말인데요, 너무 흔합니다. 자칫 방심하는 순간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입니다. 다 함께 인간의 본성을, 세상사의 이치를 바로 파악하여 대처하며 잘 살아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