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에 관하여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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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다는 말은 능력이나 업적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평소에 어떤 장면들을 보거나 상상할 때, 존재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그 장면 속 존재들을 두고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위대함을 떠올릴 것 같지는 않아요. 뭐랄까요, 위대하지 않아 위대한, 저는 그런 존재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면서 위대함을 느낍니다. 이런 장면들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나방 한 마리가 높은 우리 집 창문에 달려있는 방충망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하루가 지나도록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잠자리는 나뭇가지 뒤로 몸을 깊숙이 숨기고 비가 그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오후, 인간인 나를 피해 인간인 내가 쓰다 버릴 노란색 쓰레기봉투 안쪽 면에 날벌레 한 마리가 숨어들었습니다. 다음 날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나방은 세찬 빗줄기를 견디지 못 한 채 죽었습니다. 잠자리의 생사는 저의 무관심으로 인해 알 수 없는 상태였고요. 쓰레기봉투 안을 여러 차례 조심스럽게 살폈지만 날벌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장 쓰레기봉투를 묶어 버려야 했던 저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태어나 생을 맞이한 이 생명체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끊임없이 무수한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갔고, 죽었습니다. 살았다면, 또 펼쳐진 그들의 날들을 살아내었을 것이고요. 그리고 오늘,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 타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숨을 거둔 사람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원한 적 업었지만 누군가들에 의해 사람으로 태어났고, 누군가의 손길과 누군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아기에서 어린이로, 어른으로 성장한 어떤 이의 마지막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머물기 원했던 공간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현실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어떤 공간이었든 그는 고군분투했을 겁니다. 왜 고군분투냐, 그 마음을 누가 얼마나 알려고 했겠습니까. 그 고통을 누가 얼마나 이해했겠어요.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고,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쓰며 살았을 겁니다. 관계를 맺고, 맺은 관계 문제로 고민하고, 자주 웃고, 울었을 거예요. 미래를 그리며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대체로 그 미래는 핑크빛이었겠죠. 흙빛은 아니었을 겁니다. 미래의 그 무언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리라 믿었을 겁니다. 혹 그것이 없으면 어쩌나 종종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을 거고요. 그런데 웬일인가요. 없는 겁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데, 결국 별게 없는 겁니다.


위대한 죽음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남들은 알지 못하는 고통을 하나둘씩 가슴에 담고, 어깨에 지고, 머리에 이고 살아갑니다. 어려움을 피해 돌아가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포기하고, 실패하고, 얻고, 해내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가 들고, 사람들을 잃어 갑니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이웃을 잃어요. 물론 그들보다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요. “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생로병사를 두려워하지만, “생로사”는 호상이 아닙니까. 생과 로 사이에 수많은, 기대하지 않은 죽음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생로병사도 축복이지요. 어쨌든 그는 생로병사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그런 길을 걸으니까요. 그렇게 그는 살고, 늙고, 병듭니다.


우리로서는 늙고 병든 그의 옆에 어떤 이들이 함께할지 알 수 없습니다만, 생이 그랬듯 병과 사 역시 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니 그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게 그는 혼자가 되었고, 살기 위해, 죽기 위해 더 완벽한 혼자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축복 속에 태어나지요. 하지만 죽음은 다른 것 같아요. 세상이, 삶의 양태가 달라져서 이겠지요. 비혼이든 미혼이든 1인 가구의 비율은 매해 증가하여 현재는 40% 육박하고 있습니다. 혼자였던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누군가의 축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지요. 그리하여 죽음 앞, 그의 고군분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결국 그는 나무토막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다리에 손을 뻗을 힘도 없이 어렵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다 숨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는 그렇게 그 모든 것을 홀로 해냈습니다, 해냅니다, 해낼 것입니다.

나는, 우리는 이렇게 위대합니다. 나방이, 잠자리가, 날벌레가 그러했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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