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작점에는 대개 '회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질러진 방은 피곤함과 귀찮음을 피한 결과이고,
껄끄러운 인간관계는 마주하기 불편한 마음을 차일피일 미루다 생긴 마음의 짐입니다.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담스럽고 하기 싫은 일을 자꾸 뒷전으로 미루다 보면,
결국 쫓기듯 다급하게 처리하거나 핀잔을 듣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맙니다.
살다 보면 참 많은 순간, 우리는 습관처럼 회피를 선택합니다.
오늘은 '회피'라는 단어의 의미를 들여다보며,
외면하고 쌓아두었던 문제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회피(回避)의 회(回)는 소용돌이치는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빙빙 돌며 에둘러 가는 마음의 궤적을 보여줍니다.
피(避)는 '가다'는 뜻의 책받침(辶)과 임금 벽(辟)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여기서 '벽(辟)'은 임금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형상을 자세히 보면 형벌 도구 아래에 무릎 꿇은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감당하기 벅찬 형벌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입니다.
이 두 글자를 합쳐 보면,
회피란 '형벌과도 같은 고통과 두려운 현실 앞에서 차마 맞서지 못해 빙빙 돌며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그토록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 단어가 조용히 설명해 줍니다.
크든 작든, 마주해야 할 현실이 우리에게 뼈아픈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피는 이자를 쳐서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제는 당당히 맞서십시오"라고 권하기에는,
우리 내면의 두려움이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압니다.
성경은 이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가오시고 해결해 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10)
회피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그들은 형벌이 두려워 나무 사이 구석진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는 것이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두려움이 그들을 삼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숨어버린 그들을 찾아내어 부르십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덮어주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이 가죽옷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의 나무 뒤에서 나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도록 인도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회피하며 쌓아두었던 문제들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조용히 가져가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려운 상황을 모두 이해하신다고 위로하시며,
마주할 수 있는 힘과 해결의 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뒷걸음질 치며 나무 사이에 숨어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두려운 현실과 당당히 마주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겹겹이 쌓아두었던 내 삶의 숙제들을 그분 앞에 내어놓고,
다시 일어설 은혜를 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