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에서 한 번쯤 들어본 그 소리
바흐나 헨델의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특유의 팅팅거리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피아노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타와 비슷하고, 그렇다고 기타라기에는 소리가 일정해서 변함이 없다. 필자는 처음에 그것이 하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프는 커튼과 같은 울리는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조금 달랐다. 결국 정체는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그 소리야말로 클래식 자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악기는 지금도 있지만 그 소리는 오로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음악 신문에서 그 악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하프시코드'였다. 적어도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악기로, 피아노와 달리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낸다. 필자가 기타라고 생각했던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아노가 울리는 맑은 소리를 낸다면, 하프시코드는 '팅팅'하며 선이 진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활발하게 사용되었지만 결국 오늘날의 피아노에 밀려 쓰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강약 조절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피아노는 현을 치는 구조라 가볍게 두드리면 약한 소리가, 세게 두드리면 강한 소리가 난다. 피아노의 이름은 '피아노포르테(약-강)'으로, 이름에 이미 용도가 들어간 셈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거주하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유명한 하프시코드 제작자였으나, 불편함을 느끼고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피아노를 제작하였다. 그런 피아노는 같은 세기로만 연주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보다 풍부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프시코드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프시코드의 다른 특징은 바로 건반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아래 건반이 검은색, 위 건반이 흰색으로 되어있어 오늘날과 반대였다. 또 외부에는 그림과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기도 했다. 피아노보다 소리가 약한 하프시코드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청중들이 관람할 수 있는 장식을 몸체에 세긴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피아노보다는 화려한 편이다. 피아노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어 어차피 장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악기가 오늘날 잘 쓰이지 않게 된 것이 아쉽다. 피아노에 밀리긴 했지만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프시코드의 팅팅거리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저절로 바로크 시대의 궁정이 연상될 만큼 고급스럽다. 저절로 하얀 가발을 쓰고, 궁정에서 무도회를 추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로 그 점이 이 악기의 매력이다. 현대 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클라비코드라는 것도 있었다. 역시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오래된 악기이고, 하프시코드와 달리 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타 현악기였다. 피아노처럼 강약 조절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피아노처럼 소리가 크지 않은 탓에 주로 실내, 소규모의 연주회를 중심으로 활용되다 결국 절멸했다. 현대에 와서 재발굴되는 하프시코드와는 달리 이쪽은 아예 박물관 신세로 전략하고 만 것이다. 아마 피아노와 조음 방법이 비슷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클라비코드는 맑고 청아 하기 보는 다소 어둡고 구슬픈 소리를 낸다. 황야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연주해야 할 것 같은 악기다. 기타와 피아노의 중간쯤이라고 할까. 하프시코드와 마찬가지로 몸체에 그림을 새겨 넣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의 소리를 찾아 듣고 있다. 역시 고풍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소멸로 가는 길이지 않았을까. 피아노는 세련된 최신 가요도 무리 없이 소화하지만 이 두 악기는 바로크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적인 곡을 연주하면 어딘가 어색하게 되어 버리는데, 마치 가야금으로 '강남스타일'을 연주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독창적인 시도이기는 하지만, 역시 주류로 성장하기는 무리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바이올린과 닮은 첼로, 베스가 있고, 기타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그런데 피아노는 다른 것을 떠올리기 힘들다. 오르간 정도를 제외하면, 즐겨 사용되는 비슷한 악기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 친척들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피아노는 피아노 하나다.
지금 공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정신없이 뛰어간다. 손에 맛난 도토리를 들고서. 고놈, 운도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