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나무 기어오르기

송파구의 나무

by 하늘나루


본 글은 '낭만술집 달빛주점'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모든 삽화는 하늘나루의 창작물입니다.



우리는 비행선이 땅에 닿기 전에 뛰어 내렸습니다.엄청난 화염이 일었지만 천천히 떨어진 덕분에 달빛 날개를 만들 시간은 충분했죠. 우리가 떨어진 곳은 송파구, 서울에서 가장 거대한 숲 지역이었습니다.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이 끝없이 펼져져 있었죠. 음산하면서도 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송파구의 나무

저 멀리서 낙천(樂天) 기업에서 세운 거대한 소나무가 보였습니다. 이곳의 높다란 나무 중에서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그 소나무는 우리 세계로 치면 롯데월드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송파구는 그 거대한 숲 덕분에 시정부의 영향력이 가장 덜 닿는 곳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경찰이 우리가 죽은 줄 알았다면 오히려 탈출이 쉬워지는 셈이였습니다.


'밀지 마세요!'


승무원이 외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배 선생님까지 내리고 나자 배행선은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 숲에서 나갈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인원을 세어보니 저와 서경을 포함해 8명이 있었습니다. 여덟 명이 힘을 합친다면 이 숲을 벗어나 주점으로 가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저 좀 꺼내주세요! 여기 며칠 동안 갖혀 있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요.'


비행선에서 함께 가지고 내린 가방이 흔들렸습니다. 분명 달고기를 넣어 두었는데, 말까지 할 수 있었나봅니다. 지퍼를 내리니 고기가 아니라 날개 달린 여우의 모습을 한 생물이 나왔습니다. 동물로도, 사람으로도 보기 힘든 그 생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달고기입니다. 지금 시 정부를 다스리는 용족에 의해 오래전에 힘을 빼앗겼지요. 여러분 덕분에 봉인이 풀렸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저희를 감시하며 다른 동물들이 저희를 먹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럼 당신이 설화 속의 여우인가요?'


서경이 물었습니다.


'아니요. 그건 까마득한 먼 선조의 이야기입니다. 저와 다른 달고기들은 그분의 먼 선조쯤 되는 동물들입니다.'


'그럼 시황을 없앨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그들이 경찰과 군을 손에 넣었기에 도무지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저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고요.'


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흰 여우는 몸에서 털 한 올을 떼어 보였습니다.


'이것이 그 비늘입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용족과 연결된 힘의 근원입니다. 이것 덕분에 용은 죽을 나이가 지나도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비늘로 술을 만들어 용에게 먹인다면 그는 즉시 힘을 잃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겁니다.'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까마득한 소나무밭에서 고립된 신세였습니다. 이제 날이 밝아와 달빛으로 날개를 만들어 쓸 수도 없었죠. 결국 코엑스 소속의 비행선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그쪽으로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송파구에는 동물이 거의 살지 않는 듯 했습니다. 무성한 소나무 숲 사이로 가끔 햇빛 한 두 줄기가 비치는 정도가 다였고, 아래로는 예전에 강이 흘렀는지 깊이 파인 협곡만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하나에 횟불을 밝혀 조심히 걷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쉿.'


'누군가 온다.'


승무원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동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거미에 가까웠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도대체 저게 뭐죠?'


'우리가 오기 전부터 원래 살고 있던 생물들이야. 말하자면 이곳의 맹수지.'


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잠시만요! 우린 나쁜 동물이 아니에요!'


그 거미와 같은 생물이 말했습니다.


'멀리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는 당신 여우들을 섬겨 온 거미들입니다. 그들이 여우를 몰아내고 우리를 이 송파구에 가두어 버렸어요. 지금은 숲 속에서 솔방울을 캐는 노동에 동원되어 잘 먹지도 못하고 살고 있지요. 우리 낙천(樂天)기업도 그들의 손에 들어가 완전히 버려졌답니다.'


'달고기님, 저 말이 사실인가요?'


'사실이에요. 저들은 한때 송파를 다스렸지만 용이 자리에 오른 후 완전히 버렸져지요. 이 송파구와 함께요.'


'저희가 주점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간 끝에 송파구 가운데에 있는 소나무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엄청난 수의 증기 기관으로 솔방울을 가공하는 일종의 공장이었습니다. 소나무 안에는 거미를 비롯하여 다람쥐, 참새 같은 작은 동물들이 일하고 있었죠. 그들은 솔방울의 껍질을 벗기고 탑 꼭대기로 보낸 다음, 달빛을 쬐여 가공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50118_201927131.jpg 솔방울 공장


그렇게 만든 솔방울 결정은 이곳의 연료로 사용된다고 거미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에 온 첫날 보았던 거대한 비행선과 인천의 배들은 모두 이 결정의 힘으로 움직이던 것이었습니다. 지구의 석탄, 석유로는 그런 힘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저희가 하는 작업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천대하고 이런 구석에 가두어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단지 한때 여우들과 함께 일했다는 것 가지고요.'


거미가 말했습니다.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소나무 조각을 문에 가져다 대자 탑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리프트 하나를 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꼭대기에 이르자 여러 동물들이 모인 작업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주목! 여우 종족이 돌아왔다. 그들은 우리를 비참한 처지해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공장이 술러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비꼬는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들이 사라진 건 백년도 더 된 일이다. 네 말을 어떻게 믿냐?'


솔방을 매달아 옮기던 한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찮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잠시 듣다가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수 년간 같은 일을 반복해 오느라 변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작업을 수십 년간 대를 이어서 했기 때문에, 감시하는 독수리가 없어진 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일할 뿐이었습니다. 거미는 기쁨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흰 여우가 공장 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그 빛에 다른 동물들도 놀라 돌아보았습니다. 여우가 발을 내리치자 모든 솔방울이 잠시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앉았습니다. 이제 공장 속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죠. 솔방울을 옮기던 다람쥐들도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정말로 당신인가요? 당신들은 왜 이렇게까지 일이 심각하게 돌아갈 동안 모습도 비치지 않았죠?'


'그들이 저희를 물고기로 만들어 감금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동족이 목숨을 잃었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 덕분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


그러고 저와 서경, 승무원들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서경은 당당하게 나가 말했습니다.


'이분의 털로 술을 만들면 용족의 힘을 다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 강남 땅으로 돌아가야 하죠.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쩌면 서경이 여우로 변장하여 마치 그들의 일원처럼 보인 것이 큰 인상을 주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경의 말을 들은 동물들은 크게 호응하여 우리를 꼭대기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는 솔방울 처럼 생긴 커다란 비행선이 있었습니다. 겉면에는 빛이 바랜 글자로 '낙천기업(樂天)'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건 솔방울을 운반하는 비행선입니다. 원래 독수리들이 자동 조종 기능을 넣어 두었지만 저희가 최근에 해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걸 타고 가시면 아마 몇 분 안에 도착하실겁니다.'


'어마나!'


다람쥐 한 마리가 큰 상처를 입은 채로 쓰러졌습니다. 거미는 다리 하나가 부러졌고 솔방울을 운반하던 리프트도 추락했습니다. 동시에 정전이 되어 탑 내부가 깜깜하게 변했습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새하얀 털과 곱슬머리, 어디서 본 적 있는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저 여우의 털 한 올이라도 건드리면 너희를 다 먹어 버리겠다. 모두 멈춰라'


그 호랑이는 공장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포효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제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올라 달려들었습니다.


'장? 장! 아직 살아있었구나?'


제인은 저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어 마구 핥아대었습니다. 저는 제 목숨이 끝난 줄 알고 철렁했지만 제인은 오히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독수리..그 자식이 널 죽이려고 했어...지난번에 그런 건 정말 미안해. 내가 속았어.'


제인은 그간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 독수리가 제인의 양아버지였다니. 그러고 보니 하나고 시절부터 제인의 부모님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말을 마친 제인은 저를 껴안았습니다.


'난 그냥 너랑 같이 지내고 싶어서 그랬어. 정말..정말로 미안해.'


'지난번에 우리를 공격한 건 어떻고?'


서경이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우리 같이 주점으로 돌아가자.'


그렇지만 이미 다친 동물들이 걱정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거미의 피가 사방에 흩뿌려져 보기만 해도 참혹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람쥐는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지만, 다행이 여우가 치료하여 고비는 넘겼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들키지 않도록 하늘빛 천을 씌우고 낮은 고도로 날았습니다. 가끔 독수리들이 바로 위를 스쳐가기도 했지만 무사히 주점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저게 다 뭐야?'


주점은 포위된 상황이었습니다. 독수리나 까치들이었을까요? 아니요. 수십 명의 셰프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셰프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점 손님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셰프 세드릭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까르보나라 파스타의 맛을 한시라도 빨리 알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인천에서 찾아왔습죠!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소스, 최고급 밀로 만든 면, 그리고 인천에서 갓 잡은 해산물과 트러플로 마무리했죠. 아마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하실 겁니다'


'아뿔사. 그때 나루식당에 달빛주점 명함을 두고 간 모양이다.'


서경이 중얼거렸습니다.


그야말로 요리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점에 들어가는 동안 구수한 냄새에 유혹되지 않으려고 진땀을 뺐죠. 그런데 안에 들어가보니 손님들이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습니다. 같이 온 승무원 몇 명은 바로 떨어져 나가 그들의 식사에 합류했습니다. 서경이 당장 점장님에 달려가서 항의했습니다.


'점장님? 이게 다 무슨 일이죠? 독수리가 저희를 격추시키기까지 했는데 파티라뇨?'


'미안..그건 나도 TV를 봐서 안다. 그래도 금강산은 식후경이라고 하잖니? 인천의 나루식당과 식사류 계약을 체결했단다. 우리도 먹고 살기는 해야하잖니. 트러플 파스타, 정말 맛있기는 했어.'


점장님이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셰프 세드릭의 맛에 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런 점장님과 주점 식구들을 지나쳐 기계실로 갔습니다. 배 선생님이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다들 식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전 할 일을 다 하고 먹는 밥이 더 맛있습니다. 서경, 장, 이 털로 술을 만들어다오.'


'기계가...기계가 작동하지 않아요! 누가 이미 손을 쓴 모양이에요.'


서경이 말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윽고 독수리와 까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미허가 비행선 하나가 출발했더군. 그 사고에서 자네들이 살아 남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제 이 주점과 함께 날려버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제인, 그런 불량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돌아와!'


독수리가 소름끼치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내가 어렸을때부터 장과 살게 해달라고 한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제인은 눈에 불을 켜고 독수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까치가 독수리를 지키고 있어 제인은 오히려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어리석구나. 여우 일족은 인간들을 배신하고 우리 세계를 위협에 빠뜨렸어. 결국 마지막까지 이 세계를 지킨 건 우리 독수리와 용들이었지. 만약 너희들이 우리의 자리를 빼앗는다면 그때의 화재가 다시 반복될거야. 인간들은 너무 위험하니까. 이길 수 없다면 다 태워버리겠어.'


구석에 있던 용이 말했습니다.


'이 기계는 사용만 하면 터지도록 개조해두었어. 자, 다시 달고기로 돌아가게나. 자네들은 물 밖에 오래 있으면 건강에 좋을리가 없소. 이 세계는 우리가 잘 관리할테니 말이야. 어서 돌아가!'


그 말을 끝으로 독수리는 우리에게 창을 겨누었습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찰나, 제인이 독수리에 입에 무언가를 넣고 갔습니다.


'응? 이게 뭐지? 독약인가?'


독수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입에는 파스타 한 묶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짭짤한 소스의 맛...'


독수리가 무어라 중얼거리 시작했습니다.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팔수스님...? 괜찮으십니까?'


'거기다 고소한 계란 노른자의 조합까지...'


'이봐, 자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빨리 이들을 처리해!'


용이 호통쳤습니다.


'그렇지만....너무 맛있습니다....아! 이렇게 고소하고 부드러운 파스타는 처음이야앙...!'


독수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후 두번 다시 그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한 최후인지 알 수 있었겠지요. 그의 부하들과 까치들도 마찮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소스로 만든 스테이크에 당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분명 의식은 없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었습니다. 맛을 아는 동물들이었죠.


'이 무슨 황당한!...이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파스타..?'


용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내가 그런다고 질 줄 알아? 어차피 이 기계가 없으면 너희들은 술을 만들 수 없어! 내가 도망간 뒤에 너희들을 체포하면 그만이야. 하! 하!'


말을 마친 용은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셰프 세드릭이었습니다.


'워. 미스터 용. 그건 당신의 오판입니다. 세상에 음식이 술만 있습니까? 파스타, 스테이크, 족발, 비빔밥.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풍미도 식감도 다르지요. 글로리아, 털 좀 부탁해.'


'오케이'


여우, 아니 글로리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털을 한 움큼 뽑아 세드릭에게 건넸습니다. 세드릭은 그걸 굽고, 볶고, 계란을 풀어 섞고, 굴소스와 콩, 다진 고기와 함께 잘 섞었습니다. 물론 트러플로 만든 특제 소스도 잊지 않았지요. 채 3초도 되지 않아 먹음직스러운 볶음밥이 용의 면전에 차려졌습니다.


'자, 미스터. 한 숟가락만 해 보겠나? 가격은 받지 않겠네.'


'어디 그런 수작이 통할 줄 알고...? 그렇지만, 딱 한 숟가락은 괜찮겠지...?'


'물론.'


세드릭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용은 얼굴을 파묻고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용의 몸에서 비늘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이었죠.


'당...당신은...?'


우리는 모두 놀란 눈으로 용을 보았습니다. '해저 2만리'를 집필한 작가 쥘 베른이 앉아 있었거든요. 매우 노쇠하여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임이 확실했습니다. 세계적인 문호가 이런 일을 꾸미다니, 하나도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말해. 왜 이런 일을 꾸몄지?'


제인이 발톱을 들이대며 물었습니다.


'난 우리 시대가 저물어가는게 너무 아쉬웠어. 내가 죽을 무렵이면 이미 세상은 점점 빠르고 편해졌지. 사람들은 모자를 쓰는 대신 가벼운 차림을 선호했고, 거대한 증기선이나 비행선 대신 빠르고 편한 자동차와 비행기를 선호했네. 물론 그것들도 좋지만, 그 시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낭만이 있었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것들은 점점 사라져갔지.'


'이 세계에 들어온 뒤 마음대로 내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용족, 독수리와 연합하여 통치권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곳에 내가 살던 시대를 재현했다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지. 같은 틀에서 조금 더 발전한 그런 시대 말일세. 낭만적이지 않은가? 10층짜리 비행선이나 거리를 메우는 증기 자동차 같은 것들 말이야. 나는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려고 계속 인간 세계에 첩자를 파견했네. 그 설화 속 인간은 바로 나일세.'


늙은 작가는 허심탄회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실이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야. 이제 떠날 때가 되었네.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몸이 가루처럼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파스타를 먹고 사라진 독수리만큼은 아니었지만 허망한 최후였죠. 그의 마음이 이해가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추억과 옛 시대를 이곳에서나마 보존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감금과 폭력으로 이루어졌기에 결코 용서될 수 없는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여우가 우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시황이 가져간 힘을 다시 찾아 주어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죠? 그렇게 될 겁니다. 대신, 유감스럽지만 이곳에서 겪은 일은 아마 잊게 될 거에요. 조금씩 다른 똑같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그리고 여러분 세상에도 큰 혼란을 일으킬테니까요. 그렇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꿈과 같은 기억이기는 하지만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죠? 저는 현실과 이곳을 오가며 살았는데...현실에 돌아가도 가족이 없어요.'


제인이 말했습니다.


'그건 걱정 말아요. 세드릭?'


세드릭이 변장을 풀자 한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진에서 보았던 제인의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돌아가신 줄 알았는데...여태 지켜보고 계셨군요..?'


'그럼. 바다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달고기를 지키고 있었단다. 우리 호랑이족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일부러 숨기고 다녔지. 현실 세계에 돌아가도 걱정하지 말거라. 다 함께 갈 테니까.'


'반갑노. 나 죽는 줄 알았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제임스도 나타났습니다. 제인의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밝견했다고 하더군요. 마침내 다시 재회한 우리 넷은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진짜 이게 뭔 일인갑다. 우리 하나고 가서도 잊지 말자. 다음 번엔 내가 꼭 잘즈부르크로 초대한다. 같이 밥이나 묵자.'


그 말을 끝으로 할아버지의 볶음밥에서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빛에 우리는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죠.



'어....그게 당신 이야기에요? 다른 세계에 다녀 왔다는...?'


난 어안이 벙벙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손님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장황하고 특이한 이야기를 하는 손님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곳곳에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는 너무나도 황당했다. 한창 모험 중에 마파두부를 먹고 스테이크에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지어 냈다면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을테니.


'물론 글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하지만, 음...그 다현이라는 사람은 어디 있죠? 제임스는요?'


'여기 오기 전에 연락했습니다. 이제 이 사무소로 올 겁니다.'


오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이 학생의 말이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쇼?'


소박한 내 사무실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손님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학생과 금발 머리의 외국인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우리 서현이 이야기 잘 들으셨나요? 분명 다 잊어버린 일이었는데 홀로 기억해서 우리에게도 다시 알려주지 뭐에요.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에요.'


'맞다이'


'저..그 손에 든 박스는 뭐에요.? 혹시 먹는 거?'


'맞아요!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스테이크와 파스타죠. 한 번 드셔 보시겠어요?'


와, 정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였다. 이야기 속 동물들이 눈물을 흘리며 쓰러질 만도 하였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육즙이 쫙 퍼지는데다가 고기도 골고루 잘 익었다. 곁들여진 파인애플까지 먹으니 화룡점정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찔끔했다. 그럴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처음 먹어 봅니다! 잠시만요. 제가 냉장고에 와인이 있으니 함께 마시는 게 어떨까요? 그 이야기도 좀 더 자세히 들려 주세요.'


그날 우리는 밤이 새도록 마시고 놀았다. 시범으로 보여준다고 다현이 진짜 호랑이로 변하기도 했는데, 술김이라 진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여튼 아침이 되니 아무도 없었다. 그새 사라진 것인가? 다만 다현과 서현, 그리고 제임스가 앉았던 자리를 보니 확실히 털 몇 올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그 털들을 중문과 졸업장 앞에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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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하늘나루는 일상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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