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식아 어여 뚜식아
본 글은 '낭만술집 달빛주점'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작중의 삽화는 하늘나루의 창작물입니다.
'너희는 거기에 무슨 볼일이 있지? 너희도 설마..'
우리는 그 올빼미에게 다가갔습니다. 올빼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여기서는 이야기해 주기 힘들구나. 혹시 저 위의 집으로 날아갈 수 있겠니?'
수상스러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달빛 날개를 만들고 올빼미가 사는 선창으로 향했습니다. 아주 낡은 오두막이었지요.
'그래. 나도 달빛주점을 안다. 나도 달고기를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가진 걸 모두 빼았겼다네. 그리고 여기에 눌러앉아 그대로 살게 되었지. 혹시 그 달고기, 조금만 볼 수 있을까?'
'그전에 누구인지부터 말씀해 주세요.'
서경이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우선 너희가 변장을 풀어야지? 만약 경찰이 파견한 형사라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쪽이 형사일 수 있잖아요?'
'그럼 이렇게 하지, 하나, 둘, 셋 하면 변장을 푸는 거야.'
'하나, 둘,... 셋!'
'!!'
'선생님..? 선생님이 여길 어떻게?'
그 올빼미는 1학년때 실종되신 하나고의 배 선생님이셨습니다. 저와 서경, 다현이 같은 반이었을 때 음악 선생님을 맡으셨죠. 다현이 숙제를 안 해오자 크게 혼내셨는데 며칠 뒤에 사라지셨습니다. 아마도 다현의 짓이 분명했습니다.
'그래. 다현이가 너희를 속이고 달고기를 빼돌리려 했다고? 이해는 간다. 특히 장 네가 마음에 들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로 데리고 오려고 했을 거야. 욕심이 큰 아이니까. 내가 그때 혼을 낸 것 가지고 여기로 끌고 왔단다. 다행히 점장님과 미리 온 사람들 덕분에 감옥 신세는 면했지만. 우리는 그 달고기를 구하려고 인천으로 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어. 달고기를 이렇게 훌륭하게 가져온 걸 보니 자랑스럽다.'
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혹시 인천을 떠나 주점으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었으면 진작 돌아갔겠지. 보다시피 한번 수배 대상에 오르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이미 낮도 깊었고, 일단 오늘은 잠시 쉬거라.'
배 선생님은 우리에게 따뜻한 차와 과자를 대접했습니다. 이 세계의 음식이 아니라 진짜 세상의 것이었지요. 모두 선생님이 함께 가져온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선생님이 하나고 기숙사를 몰래 탈출하던 서경을 잡았던 이야기, 그리고 유독 장난기가 심했던 이(李)가 음악실에 낙서를 한 이야기도요. 벽 뒤에는 하나고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다현과 찍은 사진을 가져올 수 있었단다. 그 사진을 보면서 돌아기 기를 다짐했지. 돌아갈 수만 있다면 꼭 사과하고 싶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 애가 그런 짓을 꾸밀 줄이야...'
그러면서 먼저 2층에 올라가 주무셨습니다. 방에는 저와 서경만 남았죠. 우리는 오두막의 발코니로 나가 인천시를 이루는 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난 다현이 그런 애인 줄 몰랐어. 착하고 발표도 열심히 하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일을 벌이다니.'
서경이 말했습니다.
'우리, 돌아갈 수 있을까?'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다만 서경은 우울한 눈으로 저를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만 빈 바다에 울려 퍼졌습니다.
'얘들아! 이리 와봐! 지금 TV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다.'
우리 셋은 흑백 TV앞에 모여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독수리가 나와서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시황실(市皇室)에서는 이번 비행선 테러와 국립 도서관 분실 사건 등 중대한 사회적 혼란이 예상되는 바, '인간체포법'을 통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은 용의자들이 체포될 때까지입니다.'
'인간체포법이 뭐죠?'
'잘 들어 봐.'
'우리는 인간의 위협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제 그 위험이 점차 가시화되어 가고 있는데, 지난주에 발생한 비행선 테러는 우리가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봅니다. 이제 모든 기관은 시황과 시황실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인간으로 의심되는 동물을 본다면 꼭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 팔수스가 용과 더불어 임시로 시황실을 대리하여 집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동자가 체포될 때까지 말입니다. 용의자들이 소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지역은 당분간 봉쇄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독수리의 연설 직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유유히 걸어 나갔습니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이제 이렇게 숨어 지낼 수도 없겠어.'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말을 끊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제껏 용족, 독수리족이 높은 자리 다 차지하더니, 영원히 다스리겠다는 거냐?'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리가 술렁였습니다. 배 선생님은 특히 차별 대우를 받아왔던 물고기들과 갈매기족이 들고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먼 옛날 사냥꾼을 몰아낸 공로로 독수리와 용족은 경찰과 정부 자리를 보장받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자리들은 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간은 다른 동물도 기용하며 누그러지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독수리와 용족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 개정안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올빼미의 말처럼 순식간에 인천 전역은 독수리 경찰들과 주민들의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경찰이 서울로 가는 길을 모두 막아서 주점으로 가는 길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회일지도 몰라. 이 틈을 타서 주점으로 몰래 가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하늘나루!'
혼란한 틈을 타서 하늘나루로 돌아갔습니다. 하늘나루는 평소와 같았지만 불이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우리를 잡는다고 모든 교통편을 중단시킨 것입니다. 저와 서경, 그리고 올빼미는 하늘나루 3층에 있는 비행선 대기실로 갔습니다. 우리가 인천에 타고 온 그 비행선이 여전히 정박 중이었습니다.
'너희가 어쩐 일이냐? 안 그래도 그때 일어난 사고 때문에 난리다. 그래도 그 소녀가 고쳤기에 망정이지, 만약 가만 두었으면 더 피해가 클 뻔했다.'
우릴 알아본 승무원 한 명이 말했습니다.
'혹시 지금 서울 달빛주점으로 갈 수 있을까요? 거기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지금 봉쇄령이 내려져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한 것이 있으니 일단 타거라.'
승무원이 말했습니다. 한 시간 뒤, 우리를 태운 비행선이 조용히 하늘나루를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몇 분이 되지도 않아 경찰에게 따라 잡혔습니다.
'어디 가는 길이오?'
경찰이 물었습니다. 회색 날개를 가진 독수리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입니다. 아주 급한 화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승무원이 답했습니다. 경찰은 통과를 허락해 주는 대신 비행선을 잠시 검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실 내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죠. 우리가 예전에 숨어 있었던 방 문을 열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고 무사히 인천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져 경비가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30분 정도 지나 서울의 달빛주점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던 경비정과 마주쳤는데, 그 독수리가 거기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순간에 저와 서경을 알아보고 맹렬히 쫒기 시작했습니다. 그쪽에서 계속 포를 발사했기에 저희는 빠른 속도로 주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차라리 잘 되었군. 이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겠어.'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독수리는 날개에서 권총을 꺼내 비행선의 엔진을 향해 쏘았습니다. 엔진은 그 자리에서 폭발했고 불이 붙은 비행선은 송파구의 빽빽한 소나무 숲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독수리를 옅은 미소를 지은 뒤 돌아갔습니다.
한낮의 시황실.
'예상외로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용의자 몇 명 잡는다고 쓸데없는 법을 만드니 물고기, 갈매기족이 다 들고일어나 버렸으니 말이다. 의원들도 용의자를 잡고 나면 날 끌어내리겠다고 난리다.'
용이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걱정 없습니다. 제가 손으로 그들이 탄 비행선을 격추했습니다. 달고기와 함께 추락했으니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
팔수스가 말했다.
'아주 잘했군. 이제 나를 막을 것이 없으니 자네나 나나 편안히 지내면 되는 거야. 물론 약속한 보상은 잊지 않겠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추락?'
구석에서 조용히 듣던 제인이 일어났다.
'같이 와서 살게 해 준다면서요? 죽여버린 거예요?'
'제인. 그 애들이 달고기를 차지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죠? 저는 그저 이용만 당한 거고요.'
제인이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포효 소리로 집무실의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자네 딸 좀 진정시키게. 그러다 건물 다 상하겠어.'
자리에 앉은 용이 말했다.
'제인. 집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지금은 시황님과 할 이야기가 있다.'
'이 배신자...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날 생각 마세요!'
제인은 말을 마친 뒤 엄청난 힘으로 바닥의 원목마루를 부수었다. 바닥이 산산조각이 나자 그대로 그 구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