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녀기 설여사 이야기
가족들에게 갱년기임을 밝힌 설여사
금요일 저녁엔 취업준비 때문에 잠시 자취를 하고 있는 아들이 집에 오는 날이다. 아들이 오면 고기가 필요하다. 오늘은 오겹살로 오향장육을 준비했다. 아들이 오고 저녁을 먹으며 제주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제주 다녀온날 오겹살 먹으며 아빠가
"엄마가 안 돌아올 것 같아서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라는 말을 엄마에게 해서 엄청 서운해서 울었다고 아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빠가 잘못했네요."라고 아들은 내 편을 들어준다.
"아니, 엄마가 제주 갈 때 진짜 안 돌아올 것처럼 엄청 무서웠어." 남편의 말에
"그렇긴 했어요. 내가 봐도 엄마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하며 아빠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래도 집 나간 엄마를 다독여 돌아오게 할 생각을 안 하고 집에 안 오면 그대로 보내주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니? 내가 아빠랑 사이가 나빠서 이혼하겠다고 나간 것도 아니고 아빠한테 섭섭한 마음에 바람 좀 쐬며 여행을 하고 오겠다고 나간 건데." 나의 말에
"그건 엄마가 서운하셨겠네요. 아빠가 말을 좀 잘 못 하신 것 같네요. "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런 생각은 정말 1% 정도 한 거야. 다음에 집 나가면 당신 꼭 찾으러 갈게. 아니 다음엔 혼자 보내지 않고 꼭 같이 갈게."
눈치 없는 남편에게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 답을 들었다.
이젠 아들 차례다.
"근데 너는 엄마가 제주도 갔을 때 왜 잘 도착했는지 여행 잘하고 있는지 연락 안 했어?"라고 물었다.
"화 나서 집 나간 사람은 생각 정리 할 수 있게 최소 이틀은 그냥 둬야죠. 바로 연락하는 건 아니죠." 아빠 닮아 냉정한 놈이다.
"그래도 엄마 혼자 갔는데 걱정 안 했어?"
"걱정 됐죠. 그래서 4일째 되던 날 아침에 문자 했잖아요."
"그렇지, 집에 와서 아빠한테 섭섭해서 니방에서 누워 있을 때 문자 오더라."
"저도 엄마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어요. 한 일주일은 있다 올 줄 알았어요."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발이 아파서 돌아왔어. 발 안 아팠으면 아직 안 왔을 수도 있어."이렇게 얘기했지만 그렇게 험한 분위기 잡아놓고 삼일 만에 돌아온 건 나도 진심으로 두 남자에게 쑥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들이 대뜸 묻는다.
"엄마 갱년기예요? 여자친구에게 엄마가 혼자 제주도 갔다고 하니 자기 엄마도 그 나이 때쯤 혼자 여행을 가고 화도 많이 내고 예민해졌다며 엄마도 갱년기 같다고 하더라고요""
"응 그런 거 같아. 여름부터 등이 뜨겁고 지리산에서 느닫없이 아빠에게 서운해한 것도, 제주로 혼자여행을 간 것도 모두 갱년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
아들과 그동안 섭섭했던 일들을 속시원히 이야기 나누고 갱년기임을 밝히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와 이렇게 속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오겠지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오리라고는 생각 못한 갱년기였다. 난 그런 거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갱년기는 사춘기처럼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닌가 보다.
나도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이 시기가 평안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질풍노도의 갱년기를 시작하는 설여사를 버리지 말고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