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소란이 창 너머 아득한 웅성거림으로 가라앉은 오후, 찻집 한 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읽다 만 책을 잠시 덮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지요. 말투가 번듯한 이들이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사사로운 허물로 흘러가더군요. 입술을 떠난 문장들은 오후의 햇살 아래 무방비하게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부족함을 공유하며 세운 결속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다들 알면서도, 왜 그토록 언어의 칼춤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요.
사실 그들의 담소에서 제가 읽어낸 것은 악의보다는 화자 자신의 불안이었습니다. 타인을 깎아내려 스스로를 높이려는 안간힘 속에서 그들의 품격 또한 마모되고 있었거든요. 누군가를 안주 삼아 유대감을 확인하려 했던 저의 부끄러운 지난날들이 그들의 말투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입술을 떠난 말은 그 순간 타인이 아니라 본인의 내면에 가장 깊은 자국을 남깁니다. 타인을 향해 벼린 날은 결국 나라는 그릇을 먼저 깎아내고서야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저를 수십 년 전, 고향 마을의 한 집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제 회상 속에는 마을의 온갖 소식을 수직으로 꿰뚫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동네 풍문이 모여들었다가 자극적으로 변색되어 흘러나가던 분이었죠. 그녀의 집 평상은 늘 소문의 시발점이었습니다. “그 집 자식 말이야, 사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은밀하면서도 파괴적이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타인의 삶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값싼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언어는 흔히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환경을 닮아가기 마련입니다. 아주머니의 곁에서 자란 아들은 어머니의 화법을 고스란히 배우며 컸습니다. 상대를 긍정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결점을 찾아내어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이 그에게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된 셈이지요. 하지만 그와 혼인하여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며느리의 태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시어머니가 자극적인 소문을 던지면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로 응대하거나 화제를 조용히 돌려 독성을 걸러내곤 했지요. 그 흔들림 없는 정적은 지독한 세습 앞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는 기적 같은 저항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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