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편리함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스마트폰을 켜고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세상 모든 지식을 손에 쥐는 기분은 달콤했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매끄러운 답을 내놓고, 두꺼운 책을 펼치지 않아도 누군가 요점만 추려 주는 세상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은 안락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 역시 그 달콤함에 취해 사유의 고통으로부터 기꺼이 도망쳤던 사람 중 하나다.
현대인의 일상은 이처럼 기술이 설계한 안락함 속에 깊이 안착해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 검색을 수행하며, 이는 과거의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축된 속도다. 요약본이나 짧은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 이제 보편적인 경로가 되었다. 시간을 아꼈다는 안도감은 우리를 만족스럽게 한다. 하지만 이 안도감 뒤에는 ‘지능형 도둑’이 숨어 있다. 이 도둑은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힘을 소리 없이 앗아간다.
우리는 선택하며 산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려진 판 위를 따라 걷고 있을 때가 많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과거 기록에 기생하여 미래를 설계한다. 내가 보았던 것, 내가 눌렀던 '좋아요'를 바탕으로 취향에 맞을 법한 것들만 골라 눈앞에 쉼 없이 대령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보여주는 것 중 하나를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과정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수용하는 편향성을 극도로 강화하기 마련이다. 이 굴레는 사고의 폭을 좁은 울타리에 가둔다. 뉴스 제목만 보고 분노의 댓글을 적어 내려가던 그 밤을 떠올려 본다. 단 한 줄의 자극적인 문구에 내 사유를 통째로 내맡긴 채, 나는 내가 정의롭다고 착각했다. 인지적 자율성이 기술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영혼의 많은 부분이 시스템에 위탁된 뒤였다. 이것은 고발이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나약함에 대한 자백으로 읽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편리함이 비난의 대상일 수는 없다. 몸이 으스스한 감기 기운에 젖은 날이나, 업무에 치여 한 줄의 문장조차 버거운 날에는 기술이 건네는 요약본이 절실한 휴식이 되기도 한다. 모든 순간을 날 선 사유로 채울 수는 없으며, 때로는 이 매끄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안온함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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