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슬픔이 나를 반길 때
나는 미처 보지 못한 척
슬픔을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
슬픔 대신에 슬픔의 주위에 자리 잡은
기쁨과 즐거움, 그따위의 긍정적인 마음만을
나의 곁에 세우려 했어
슬픔은 그런 나를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보았지
말없이 바라보았다는 말이야
슬픔에게는 외면과 무시가 익숙했던 거지
애써 익숙해지고 무뎌진 것처럼 행동하는
슬픔의 모습이 나는 너무 슬펐어, 또 외로웠어
그렇기에 나는 내가 불러 모은
긍정의 모습들을 도로 밀어냈지
그리고 애써 웃는 슬픔을 소리 내어 불렀어
슬픔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가까이 오자
나는 슬픔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슬픔의 귓가에 얼굴을 두고 속삭였지
마음껏 슬퍼해도 된다고
슬픔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어
수많은 이들이 슬픔을 밀어냈으며
슬픔이 필요 없다는 듯 굴었을 테니까
그래,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내가 슬픔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지는 나조차도 몰라
어쩌면 나는 괜한 객기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을 테지
그 누구도 품지 못했던 슬픔을 나는 품을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나의 솔직한 마음은 그것의 이상이야
나는 슬픔을 품기보다는 슬픔을 이해하기를 원하고
슬픔의 겉모습보다는 슬픔의 속마음을 알기를 원해
설령 슬픔의 본모습에 내가 물들어버린대도
그건 너의 탓이 아니라고 슬픔에게 말해주고 싶어
너에게 물든 나도 결국 나라고
슬픈 내가 아닌 내가 슬픈 것이라고
상처 입고 가녀린 슬픔에게 알려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