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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염병은 대 환영, 따로 또 같이

by 행복한부자 김미송 Feb 25. 2025


필사의 선한 전염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눈을 떴다. 반쯤 잠긴 눈으로 책상에 앉아 오늘의 필사를 시작한다. 펜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 글자 하나하나를 옮겨 적으며 작가의 문장이 내 안에 스며드는 묘한 순간이다. 브런치와 블로그 발행까지 마치고 시계를 보니, 이런... 또 지각이다.


"아, 또 늦었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독서모임으로 향했다. 오전 7시 시작인데,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부지런한 선배님들 (교학상장의 의미로 선배라고 호칭)은 조별로 감사 나눔을 시작한 후였다. 이날 따라 시스템 점검으로 마이크도, 스크린도 작동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제약이 오히려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든다.




환경 탓은 이제 그만,


"마이크가 없으니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아요, " 여기저기서 긍정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H 선배님의 원포인트 강의는 열악한 환경으로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내용은 장중을 사로잡았다. 마이크와 스크린이 없는 것이 신의 한 수다. 모두가 더 가까이 모여 귀 기울여 들었고, 그 친밀함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오늘의 책은 림태주 작가의 『오늘 사랑한 것』이다.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책튜브로 듣고 왔지만, 그 짧은 내용만으로도 임팩트가 강해 삶에 작은 실천이 일어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특히 가족들에게 처음에는 오글거렸지만 지금 이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 심장과 심장을 맞대면서 꼭 안아준다. "사랑해"라는 말을 덧 붙이면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오히려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매일 한 단락씩 읽고 사색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2차만 하면 서운해요, 3차는 가야죠^^


독서모임이 끝나고 근처 카페로 이동하여 뒤풀이가 시작된다. 공저 2기에 참여한 선배님들은 쫑파티 일정이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S 선배님과 J 선배님이 계획에도 없이 함께 3차로 자리를 이동했다. 세 사람은 S선배님이 검색한 부산대 인근 브런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K선배님이 보내주시는 필사 내용, 받기만 했는데  저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어요" J 선배님이 상큼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K선배님과 함께 필사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S선배님도 덧붙였다.

감사하게도 J선배님은 내가 보낸 필사내용을 받아보기만 하다가, 독서하면서 2% 부족했던 갈증이 해소된다고, 필사를 시작하게 됐다. S선배님은 복잡한 마음을 글로 나타낸 것에 대해, 댓글을 남겼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면을 단단하게 함께 다져 나갔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는데 흔쾌히 동참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선배님 모두 같은 날 필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필사'로 뭉쳤다. 각자의 필사 내용을 공유하면서 블로그와 밴드에도 함께 올리기로 약속했다. 더불어 나 홀로 해오던 조화로운 부의 일정 관리, 더 해빙의 해빙과 감사 기록도 공유했다. 두 선배님도 함께 동참하겠다고 한다.

"K선배님이 권유하거나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 J 선배님이 말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스스로 마음이 동해서 참여할 때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귀한 인연에 감사함이 벅차오른다. 필사의 선한 전염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이 기쁘다.


식사를 마치며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책을 옮겨 적는 단순한 행위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책을 옮겨 적는 게 아닌, 아주 특별한, 남다른 필사의 여정이 시작됐다.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놀라운 힘이 있다. J 선배님의 센스로 필벤저스라는 팀네임이 탄생했다. 매일 시나브로 성장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므흣하다.


인생은 때로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으로 가득 차 있다. 지각이라고 참석하지 않았다면, 이 특별한 만남도, 필사의 약속도 없었을지 모른다. 매일 아침,  혼자가 아닌 따로 또 같이, 우리의 시간을 위해 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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