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을 열고 비 온 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언어에는 음악이 깃들어 있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있을까? 아니면 혹시, 잡음을 만들고 있는 걸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듣기 싫은 말은 어떨까? 그것은 음악이 아닌 잡음으로 귀에 거슬린다. 음반에서 잡음이 들린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그 음반을 버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을 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유독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만 취하려 한다. 방심하는 사이, 마치 귀신에 홀린 듯 그들의 말에 넘어가 지금도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김종원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명확하게 짚어냈다.
"첫째,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둘째, 자기 욕심만 가득한 게 느껴진다.
셋째, 내 입장을 전혀 고려한 언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심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어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본심이 드러나고 만다. 결국은 언어다. 상대의 언어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 사람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것이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아니면 필요 없는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거슬리는 잡음이 되지 않기 위해, 매일 나를 점검한다.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을 하나씩 걷어내어 강물에 흘려보낸다. 그렇게 비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해는 더욱 반갑다. 해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항상 우리를 향해 빛을 비춘다.
뜨는 해,
중천의 해,
지는 해,
모두가 소중하다. 오늘도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맞이하려 한다.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하루가 아름다운 선율로 사람을 즐겁게, 이롭게 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한다. 관계를 확장하려고 했던 철없고 싱그럽던 젊은날에 비해 이제는 관계를 좁혀가고 있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질보다 양에서, 양보다 질로, 질이 곧 결이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