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때로 색안경이 끼워져 있다. 당신은 어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흐린 날씨 탓일까? 게으름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침대가 나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 여섯 가지를 적고 실행하겠다는 다짐, 조화로운 부 덕분에 게으름을 물리치고 일어선다.
"모든 의심은 믿음 이후에 온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음미한다. 대체 무슨 뜻일까? 몇 번을 낭독하고 또 낭독한다. 믿음 이후에 의심이 온다고? 되새김질을 하다 보니 문득 남편이 떠오른다. 신혼 초, 늦으면 "어디야? 언제 와?"라고 물어보게 된다. 믿지만 분명 의심 반, 걱정 반이다. 그렇다. 알고 믿기 때문에 걱정도, 의심도 생기는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먼저 믿기 때문에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을 만나면 판단하기 바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말이다. 그땐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덜 익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감이 익어야 단맛을 내는데, 덜 익으면 떫은맛이 나듯 나는 떫은 감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부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살았다.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단감으로 익기 시작하면서 교만과 부정적인 색안경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 훈련은 혹독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덕분에 지금은 책을 읽을 때 온전히 내 생각을 제로 상태로 만든 후, 백지상태에서 읽는다. 그러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감사함이 넘친다.
작가의 오랜 노하우를 편안하게 앉아서 얻을 수 있으니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2만 원 투자해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단 한 페이지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것을 건진 셈이다. 본전 빼고 주리가 남는 장사다.
댓글이나 서평, 리뷰를 남길 때도 내게 감동을 준 포인트에 집중해서 남긴다면 악플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설레는 보랏빛 색안경을 끼고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
먹구름이 잔뜩 찌푸린 구름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구름이라고 매일 어떻게 기쁘기만 할까?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니 너무 사랑스럽다. 마치 우리 인간의 삶처럼, 때로는 흐리고 때로는 맑음,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 삶에도 믿음이라는 맑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다른 빛으로 보일 것이다. 의심과 불신의 짙은 색안경이 아닌, 믿음과 사랑의 맑은 안경을 써보자. 같은 세상이라도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