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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이다

by 서강


훔쳐야 가질 수 있는 것


누군가의 말을 듣다 보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설득당한다는 것이다. 마치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과도 닮았다. 봄은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새싹과 봄비로 자신의 출현을 알린다. 짧지만 강하게, 우리의 마음을 훔쳐간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많지만, 마음만은 예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기에 '훔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도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도둑질당해야 가능하다. 마음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다.



아주 오래전 깊은 상처가 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 중 한 명이 "더 큰 일에 비해라"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는 지금 이것보다 더 큰일이 없는데 말이다.' 차라리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몸에 인을 새긴 것처럼 아직도 아려온다.


말로 받은 상처는 아물 기미가 없다. 그것이 그 사람의 온전한 마음이었겠지,. 술을 마시면 본심을 알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을 통해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가 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도록 다른 사람의 가슴에 남는지, 어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말조심이다.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서 벗어나 욕심을 온전히 내려놓은 날, 하늘과 구름, 산과 강, 나무와 바람이 주는 상쾌함에 저절로 감사가 넘친다. 자연은 말이 없다. 오직 존재만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봄비가 계속 내리더니 어느새 햇볕이 쨍쨍한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봄은 도둑처럼 슬금슬금 오지 않는다.

잠깐 머물다 가기 때문에 그럴까, 새싹, 봄비 등으로 자기의 출현을 팩트 있게 알려준다. 짧지만 강하게 자신을 알리니, 외면할 수가 없다.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지 않기를,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살리는 팩트 있는 언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말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훔치는 열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듯, 우리의 말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계절이 될 수 있기를,


오늘 하루 세상에 숨겨진 언어의 보물 찾기를 나선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봄비가 대지를 적시듯 상대의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기를, 누군가의 가슴에 봄을 심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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