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커서 호강시켜 줄게
“엄마, 내가 커서 호강시켜 줄게.”
여섯 살 꼬마가 건넨 이 한마디에 박복한 년 내 엄마의 가슴이 뜨겁게 젖었다. 밭일로 굽은 허리를 펴고 아들의 눈을 바라보던 그 순간, 엄마는 그 말속에서 무거운 생의 끝에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를 건져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 작은 약속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별처럼 빛났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눈치도 없이 신혼부부 사이에 끼어서 잠을 청했다. 밤마다 별을 세며 속으로만 울었던 엄마. 참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생명은 자랐다.
첫 아이로 딸을 품에 안았지만,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그 아이를 마음에 묻어야 했다. 처가살이 중에도 기세등등한 남편과 시어머니의 등쌀은 엄마의 숨통을 죄었다.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결국 그 작고 연약한 생명을 데려간 건 아닐까.
엄마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훈장이었다. ‘양반집’이라는 자존심은 지켰지만, 비 오는 날 비설거지를 안 했다고 우리 할머니는 자식 아홉을 모두 공부시키지 않았다.
글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자식들이 글을 모르게 된, 기막힌 역설이 시작됐다. 그 역설은 후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다.
할아버지는 키가 작고 조용한 성정이었고, 할머니는 기골이 장대했다. 여자 신발이 맞지 않아 남자 고무신을 신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덩치로, 남편을 제압한 것이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가 큰 유전자는 자식들에게 남겼다는 점이다.
아버지 형재들은 모두 키가 크고 인물도 훤칠했다. 잘 생긴 아버지의 모습이 엄마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첫 아이 딸을 잃은 슬픔 속에 선물처럼 아들이 찾아왔다. 그 아이는 엄마의 그림자처럼 늘 곁을 따라다녔다. 밭에서 호미를 잡은 엄마 옆에서 그 아이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커서 꼭 호강시켜 줄게.”
어린아이 눈에도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보였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하지만 평온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째 아들을 출산하고 잠시 숨을 고르던 어느 날, 큰아들이 갑자기 체해 심한 경기를 일으켰다. 놀란 아버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읍내 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