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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홀씨

by 서강


언어의 흔적을 흩뿌려야만 민들레 홀씨처럼 어딘가에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것. 꾸준히 써 내려가는 일상 속에서 비로소 진짜 글이 자라난다는 깨달음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시댁에 갈 때마다 마당 한 편의 소 마구간에서 나는 퇴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처음엔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 거름이 밭에 스며들어 작물을 튼실하게 키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장은 서툴고 냄새나는 것 같아도, 꾸준히 쌓이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피워 올릴 거름이 된다.


블로그, 브런치, 밴드에 하루 세 번 글을 올리는 습관은 내 삶의 새로운 축이 된다. 김종원 작가가 말한 '1일 3 포스팅을 농밀하게 실천하기 위한 7가지 태도'에 내 생각을 더해보니, 글쓰기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다.



"잘 쓸 필요는 없다." 이 한마디가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 잘 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시간을 들이지 말라는 조언도 내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일상의 업무에 치여 시간이 항상 부족한 나에게, 글은 짬을 내어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흐르는 것임을 안다.


대화를 많이 넣으라는 조언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김훈 작가님의 허송세월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바로 유튜브에서 김훈 작가님의 육성을 찾아 듣는 순간,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하시는 말씀이 곧 글이었다. 말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종이 속으로 흡수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 나도 저렇게 말을 하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 작가님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글이 되게 하면, 글쓰기는 더 이상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의 연장선이 된다. 글감은 정해진 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내내 순간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떠오른다. 그때 바로바로 메모해 두면 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내가 본 모든 것에서 글감을 찾는 자세. 오타나 문법 오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는 여유. 맞춤법 검사기가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것.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솔직한 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싶은데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도 하늘은 불만이 없다. 불만은 또 다른 불만을 낳을 뿐. 하늘과 강, 산, 나무, 새,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감사를 배운다. 어제 아침에 인사를 나누지 못한 해에게 오늘 인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해지는 끈끈한 관계다.


글쓰기도 그런 것 아닐까.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손가락이 근질거리고, 마음 한편이 허전해진다. 소 마구간의 퇴비처럼 당장은 냄새가 나고 불편할지라도, 꾸준히 쌓아가는 글의 흔적들이 언젠가 푸른 생명력을 키워낼 것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 어딘가에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글씨 홀씨를 뿌린다. 누군가의 마음 밭에 내 단어들이 살포시 내려앉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KakaoTalk_20250418_081052778_01.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KakaoTalk_20250418_081052778_02.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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