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는 주체를 찾아서,
글은 거울이다. 때론 가혹하고, 때론 따뜻하게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글이 되는 말을 하고 있는지, 쓰고 있는 글처럼 살고 있는지 ,
어느 주일, 교회에 새로 온 부부 이야기가 생각난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엘리트 커플. 속으로는 깊은 균열과 고통. 새 가족을 전도한 집사님과 아내분의 소속 지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오늘 설교가 얼마나 은혜로웠는지, 새 가족을 위해 상담해 달라고. 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현실. 설교는 구원의 메시지였지만, 강사가 강의 자료를 준비하듯 목사님도 설교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지 설교 내용이 목사님의 삶은 아니었다. 말하는 것과 사는 것, 그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혀가고 있을까, 신앙은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내는 것. 진정한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임을. 설교는 입술로 전하지만, 삶은 행동으로 증명됨을 깨달았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오롯이 나를 위해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본다. 한 권의 책에서 단 한 가지라도 배워 습관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작가에게 너는 글처럼 사느냐?
목사에게 너는 설교하는 것처럼 사느냐?
강사에게 너는 말하는 것처럼 사느냐?
이런 질문은 나의 성장을 해칠 뿐이다. 질문과 답은 내게 해야 한다. 나는 글처럼 살아야겠다. 나는 성경 말씀처럼 살아야겠다.
책을 읽을 때 이 책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지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다. 요즘은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다. 작가, 시인, 화가들의 글과 시,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데 큰 울림이 있다. 김훈 작가의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해서 읽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사색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됐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출처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 <<책은 도끼다 中>>
어느 기자와 인터뷰할 때 부친의 묘소에 다녀온 얘기를 하면서 말한 것이 글이 됐다고 한다. 김훈 작가의 특징은 구어(口語)가 문어(文語)라서 말로 나오는 문장을 받아 적으면 한 편의 글이 될 정도라는 말에 일시 정지가 됐다. 김훈 작가의 글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된다." 이런 감정, 느낌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가 있는지 입이 떡 벌어진다. 할머니, 아버지, 동생, 엄마를 차례로 떠나보내며 느꼈던 감정들. 처음엔 격렬했던 슬픔이 이제는 깊고 잔잔한 그리움으로 변했다. 슬픔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다. 계절처럼 변화하고, 흐르고,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난다.
진정성 있는 글은 말에서 시작된다. 김훈 작가의 글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치유의 과정이며, 기억의 재구성이며, 삶을 성찰하는 거울이다. 글을 통해 슬픔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글이 되는 말을 하라, 말하듯 글을 쓰라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바로 유튜브에서 김훈 작가님을 검색해서 세바시 강연한 내용을 들었다. 경이로웠다. 말을 하는데 수필집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그대로 옮겨 적으면 책이 되는 말만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구어(口語)가 문어(文語)가 되듯, 말을 하는데 수필집 한 권을 읽는 것 같은 경이로움에 빠져든다. 삶이 제자리걸음이라면,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모든 질문을 내게로 유턴한다. 삶은 계속해서 글이 되고, 말이 된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얼마나 진실되게 살아가느냐다. 앞으로 어떤 글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방향을 찾은 것 같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