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을 되찾고, 얽힌 실타래를 어느 정도 정리한 승민은 이제 시간 장치의 작동 원리와 한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었고, 시간 여행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조율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시간 여행에는 명확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규칙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본질적인 제약이었다.
승민은 장치를 사용하기 전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저항감을 느꼈다. 장치를 작동할수록 작은 오류가 생겼고, 주변의 환경도 이전과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순간엔 시간의 문이 아예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조율자의 말을 떠올리며 승민은 이제 장치의 한계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조율자가 말했던 첫 번째 규칙은 단순했다.
"시간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흐름이다. 역행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줄어든다."
승민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현재를 왜곡하고, 심지어 미래의 가능성마저 축소시킬 수 있음을 실감했다. 그는 더 이상 무작정 과거를 바꾸는 시도를 할 수 없었다.
승민은 두 번째 규칙도 몸소 겪었다.
"한 사람이 시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더 큰 변화를 시도할수록, 그 반동은 강해진다."
어느 날, 승민은 과거로 돌아가 동네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를 막으려 했다. 당시 사고는 수많은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부모님을 잃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화재를 막으려 해도 그 결과는 매번 변칙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화재가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이어졌다. 마치 시간 자체가 그 사건을 반드시 일어나도록 설정한 것처럼 보였다.
이 경험은 승민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과거의 특정 순간은 강하게 고정되어 있으며, 이를 억지로 바꾸려는 것은 결국 더 큰 균열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율자는 승민에게 단 하나의 희망적인 메시지도 남겼다.
"시간은 완벽히 닫힌 것이 아니다. 작은 변화는 가능하며, 그 변화가 쌓이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승민은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그는 과거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통해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조화롭게 연결 짓는 작업이었다.
승민은 이제 장치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조율자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시간 장치의 사용 가능 횟수와 한계점들을 꼼꼼히 기록하며 계획을 세웠다.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이상 단순한 탈출구가 아니라, 책임을 수반하는 선택임을 인지했다.
어느 날, 수진은 물었다.
“오빠, 이제 우리가 진짜 괜찮아질 수 있을까?”
승민은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걸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변화는 만들어낼 수 있어. 그게 시간 여행의 본질이니까.”
시간 여행은 더 이상 과거를 되돌리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과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승민은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며, 규칙과 한계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결국 시간은 규칙 속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승민과 수진의 손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