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차단하고 싶어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나의 바다

“저 생각을 좀 차단하고 싶어요. 계속 머릿속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자꾸만 제가 이 관계를 망친 것 같아서…”


선생님은 말없이 내 말을 기다려주셨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천천히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제가 그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건가…

계속 거기서 머릿속이 안 빠져나와요. 그래서 너무 괴로워요. 그냥 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어요.”


전날도 새벽 두 시, 네 시에 머리에 열이 너무 올라서 깼고, 그 전날은 물속에서 버둥거리다가 숨을 몰아쉬며 깼다.

눈을 뜨면, 생각이 먼저 달려들었다.

머리로는 끝난 관계인데, 감정은 여전히 그 안에 있어서, 그 간극을 매울 수 없어서 결국 나 자신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돌면, ‘나 때문이야’라는 결론만 자꾸 떠오르지 않나요?”


맞다. 결국은 내 탓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덜 말했더라면.’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건 자책이라는 이름을 한… 마음의 감옥일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감정은, 사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온 거잖아요.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이해받지 못한 감정을 계속 반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랬다.

나는 더 잘하고 싶었던 거였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너무 이해하려 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 마음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그 허무함이 그대로 죄책감으로 뒤바뀌어 나를 찌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각을 차단하고 싶다는 건, 아마 감정을 거부하고 싶다는 말과 비슷해요. 생각을 억누르면 감정은 더 강해지거든요.

오히려 스스로 ‘아, 내가 지금 참 괴롭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게 생각을 쉬게 만드는 길일 수도 있어요.”


그 말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그동안, 감정을 너무 많이 말해버려서 관계가 망가졌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 감정들이 아무 데도 닿지 못하고 떠돌았기 때문에 더 아팠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괴로웠구나”라는 마음을 받아들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상처 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억울해요.”


말하고 나서도 울컥했다.

그 억울함은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게 아니었다’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었다.


선생님은 한참을 듣고 계시다가 이렇게 덧붙이셨다.


“때로는요, 닿지 않는 말이 더 나은 말일 때도 있어요. 그 사람이 듣지 않으려는 순간에 아무리 말해봤자,

그건 결국 벽에 대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은 흙탕물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선생님께서는 내 눈을 보시더니 다시 조용히 이어나가며,


“말한다고 더 맑아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마음이 더 흐려질 수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선택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충분히 말한 사람이고, 그 말을 들을 준비가 없던 사람 앞에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그걸 인정하자, 머릿속이 조금 조용해졌다.

그날 상담실을 나오며 나는,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던 말을 조용히 떠나보냈다.


충분히 말했고, 충분히 괴로웠어. 이제 그만 말해도 괜찮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스스로를 이해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쁜 것도, 실패도, 수치도 아니다.


그건 그냥, 그때의 나였던 거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차단하고 싶다는 마음을 차단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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