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겠는 나를 이제는 마주해 보기로
“다음 원활한 상담을 위해 검사를 몇 가지 해오셔야 해요.”
그 순간 약간 당황했다.
‘이런 것도 검사로 나오는 걸까?‘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예전에 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를 제대로 못 들었던 기억이 났다.
며칠 뒤, 선생님이 링크를 보내주셨다.
집에서 진행할 수 있는 세 가지 심리 검사.
하나는 MMPI, 하나는 TCI, 그리고 문장검사.
클릭하면서도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었고, 문항 수를 보고 먼저 한숨이 나왔다.
그 말 안엔 사실 꽤 오래 쌓인 피로감이 묻어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이 왜 이렇게 무너졌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검사라도 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은 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MMPI는 수백 개의 문항이 이어졌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다”,
“나는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같은 문장들.
질문 하나하나는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내 안을 건드렸다.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문장을 보며 잠깐 손이 멈췄다.
나는 감정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감정을 ‘이해시키기 위한 언어’에 더 익숙했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두는 방식’에는 미숙했다.
나는 말했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할 줄 몰랐고,
상대는 말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서 무너진 건 언제나 나였다.
두 번째 검사인 TCI는 ‘기질’과 ‘성격’을 구분해서 보여준다고 했다.
낯선 단어들이 반복됐고, 어떤 문항은 너무 나를 보는 것 같아 불편했다.
“나는 주변 사람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나는 내 의견보다 타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내 감정에는 박하고 상대의 마음에만 너무 관대해졌을까.
정확히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모든 움직임을 맞춰버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도려내듯 조심스럽게 표현했고, 상대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계산된 온도로 감정을 조절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관계가 무너졌고,
나는 ‘나 때문인가?’라는 질문 속에 갇혀버렸다.
나 자신이 너무 복잡하고 귀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너무 상대를 힘들게 하는 건가.”
“정상적인 관계가 어려운 사람인가.”
그런 생각은 며칠이고 이어져서 숨이 막혔다.
애착은 고정된 인격이 아니라, 감정의 패턴임을 깨달았다. 누구나 불안정할 수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변화의 시작인 것이다.
검사는 하나의 출입문이었다.
거기에 답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향한 오래된 질문들과 마주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아무도 나의 의도를 몰라줬을까.”
“왜 나는 항상 설명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더 이상 타인의 시선 속에 있지 않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문항들 중 나를 가장 오래 멈추게 한 문장은
“나는 나를 잘 아는 편이다.”
그 문장을 읽고 답하지 못하고 오래 머물렀다.
문장검사도 막막했다. 막상 빈칸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프다고도, 괜찮다고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삼키는 상태.
나는 빈칸들을 마치 누군가의 낡은 일기를 다시 쓰듯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몇 개의 문장 끝에 그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MMPI는 통계적이고, TCI는 구조적이었다면,
이 문장검사는 정직했다.
내가 지금 가장 회피하고 있는 감정을 아무런 틀 없이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빈칸을 채우는 과정에서 나는 어느 대답보다 나를 많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감정,
문장이 되지 못한 마음,
아직 혼란한 서사들.
이제는 조금 더 단정한 문장으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무슨 말이든 괜찮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꺼낸 말이면 그걸로 충분했던 게 아닐까.
검사를 끝내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건 아마, 그 수많은 문항 속 어디에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다시 또 자책의 굴레에 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복잡할까.’
‘왜 이렇게까지 민감할까.’
이제는 그런 나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싶었다.
검사지를 다 채운 내가 나였고, 그 안에서 나를 알고 싶어 했던 것도 결국 나였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그 수많은 문항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나 스스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날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검사는 나를 진단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말을 시켰을 뿐이다.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하며,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어떤 언어를 써왔는지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진짜 회복의 첫걸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