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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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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Collector Nov 15. 2024

'여기있다"/맹재범(2024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 中)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 줄 수 없지만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여기 있다/맹재범>









집과 일터, 일터와 집. 

이렇게 두 군데를 왔다갔다 시계추처럼 지내는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꿈이 있다.

 

아직 불타오르고 있는 지도 모르는 아득하게 멀리 fading out

아니, 이미 faded out인지도 모르는 그 경계선 사이에서 

그저 서점에 가서 이전에 즐겨 읽던 친숙하지만 낯설어진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훑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그리고 SNS에 올릴 한 컷 찍어 소장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집이 없나, 시집 제목을 눈으로 대강 훑다가 제목이 내 시선을 잡으면

휘리릭 그 속을 훑어보다간,

니를 그 꿈에 조금 더 가까이 근처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작은 성과가 있던 날 저녁 가볍게 회식하고 어깨를 거들먹 거리며 부른 대리기사가

나를 멀어져가는 '집'으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돈 만원과 아니 플라스틱을 한 번 슬쩍 긁는 가벼움으로

그 고되게 적어간 詩人의 퇴고작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척 하며

취기에 '詩'가 내려준 '집'으로 가는 골목길 주변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길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집'을 구경했다.


어제도 지인과의 만남 후 눈 앞에 보인 영풍문고에 들어가 

칫솔 사러 마트에 간 김에 냉동창고 앞에 선 것처럼 

시 제목들을 주욱 들여다 보다가 

'신춘문예 당선 시집'을 손에 들고 왔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나면 허한 맘을 달래기 위해 

그 허한 맘이 낮에 있던 일 때문인지 

늘 있던 일 때문인지 알코올 때문인지 분간도 못하면서도 

햄버거 하나 주문해서 기숙사 책상에서 우걱우걱 혼자 씹던, 

그러나 '집'에 있던 그때처럼 

허기에 산 '시집'을 

이제는 배가 불러 우걱우걱 씹지도 못하고 한 쪽에 두었다가 


잠이 깬 새벽에 시 한 편 읽고 일 해야지 

우쭐대며 첫 장을 열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집'에 가는 방법이 갑자기 떠올라 울컥했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는 나도

 '여전히 여기에 있다'


잠시 잊었지만, 

'집'에 가는 방법도 여전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여전히 여기에 있'는지 잊었었다. 


'집'에 가는 길은 몹시 구불거리고 경사지고 

나는 이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쉬이 서점 주인에게 돈 만원 쥐어주고 '시집'을 타

언제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무엇이든 될' 줄 알았지만 

'착각이 나를 지운다.'


그러나 있었다. 

'있다'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집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니, 가고 싶은건지 알 수 없었지만 

오늘 그의 시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덜컥 적시며 쏟아'졌다. 

'다시 일어서' 보니 

내가 그 '사람'이었다.


'여기 있다'

앞 페이지의 '맹재범'씨의 사진 속 그의 눈이 

나에게 말을 건다. 

집이 '있다'

 

매년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꺼내어 

가슴에 품었던 <신춘문예 당선시집>

그리고 2002년 2003년 쭈욱 나열된 티켓들을 보며 

얼큰하게 취했었다.

그래도 그 땐 취한 지 몰랐다. 

시집을 안고 버스를 타면 온통 취한 사람들 뿐이었다.


지금은 안취해도 취한 것 같다.

아무도 취해 있지 않아서

나는 술 마시지 않고도 헤롱이는 것 같다.

그래서 대리기사를 불렀다.

취한 사람들이 많은 버스를 타고 갈 자신이 없었다. 


'맹기사님'이 내게 속삭인다.

'집'이 있다고. 

'덜컥 적시며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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