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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

폭설

by 조은영 GoodSpirit

중학교 겨울방학 오후 보충수업을 땡땡이 친 날이었다. 학교 근처 광천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서 화순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잘 놀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눈이 무릎 아래 정강이까지 쌓여 있었다. 친구집에서 영화를 봤던가. 눈이 그렇게 쌓이는 줄도 모르고 대체 몇 시간을 뭘 하고 놀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동안 함박눈은 계속 내리고 주변은 어두웠다. 터미널에는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두툼한 외투에 양손을 깊숙이 찔러넣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여기저기 웅성웅성하는 소리도 들렸다. 버스가 끊겼다는 소식에 당황한 사람들은 당장 어쩌지를 못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중인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표소로 가서 광주행 버스 운행여부를 물었지만 폭설로 모든 버스가 끊겼다는 짧은 답변이 전부였다.


'어떻게 집에 가지?'


'어떻게든 되겠지...'


집에 전화해서 태우러 와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보충을 땡땡이치고 화순까지 왔다는 말을 무슨 염치로 할 것이며 승용차로는 운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발이 묶인 사람들의 마음도 모르고 눈송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소신껏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았다. 나는 멍하니 저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눈을 응시했다. 속도 없이 그 눈이 퍽 예쁘게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희뿌연 눈발 사이로 뽀드득 소리를 내며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봉고차 한 대가 마치 다른 차원을 뚫고 오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아주머니 일행이 우르르 차를 향해 나아갔다. 그 중 한 분이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학생! 학생도 광주로 간다고 했지. 빈 자리 있으니까 같이 타. 광천동에서 내려줄게."

"아, 네."


나는 얼떨결에 무임승차를 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차는 어기적어기적 천천히 눈밭을 헤쳐나갔다. 전조등 불빛에 끝도 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들의 행렬이 보였다. 도로에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눈 덮인 세상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손목시계의 초침은 더뎌진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째깍째깍 잘도 움직였다. 광주 광천동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결국 눈은 멈췄고 하늘에 별들이 맑게 빛났다. 집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다 끊겼으므로 걷기로 작정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걷는 것은 자신있었다. 집에 전화는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집 나간 딸이 직접 연락하지 않고서는 연락이 닿을 방법은 만무했다.


'뭐 어차피 늦었는데, 자고 계실 수도 있고, 지금 전화하면 혼나기밖에 더해. 그렇다고 집에 가서 안 혼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가서 혼나지 뭐.'


집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1시간을 넘게 걸었다. 겨울밤 그 먼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서웠을까. 발도 젖고 추위에 떨며 모든 에너지를 체온을 유지하는데 사용했을까. 그래서 그 긴 보행의 시간에 대해, 단지 걸어갔다뿐, 아무 기억이 없는 걸까. 그렇게 힘들게 집에 당도한 나는 살짝 열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두운 집, 그러나 거실에 켜져있는 작은 미등 불빛에 언몸이 녹는듯 했다.


열린 현관문을 통해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간 순간,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에게 물었던가. 덜 혼나기 위해 눈밭생존기를 주저리주저리 읊었던가.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옅은 불빛 아래 흔들리는 부모님의 눈빛과 표정에서 읽혔던 안도감. 터질듯한 불안이 허물어진 찰나 다시 제 몸을 추스리고 일어선 안도.


아버지는 비틀거리듯 일어서서 가까이 손에 잡히는 빗자루를 잡고 나를 때렸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등에 맨 가방을 때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라고 때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딸을 다시 보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그의 고통을 모르는 딸에 대한 원망의 몸짓이었다. 어머니는 빗자루를 붙잡으며 말렸고 아버지는 쉽게 빗자루를 놓았다.


그날 아버지는 술을 마셨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체벌은 폭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약했을 뿐이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서글펐을 뿐이다.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를 주문처럼 되뇌는 아이였다. 그리고 항상 모든 일은 어떻게든 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에는 '될 때로 되라'는 자포자기보다는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의 주문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주문은 항상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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