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들을 추억하며
학창 시절, 친구가 많았다. 애써 누구를 사귀려고 한 적은 없었다. 마음이 가는 친구들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대부분 좋은 아이들이었다. 적어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해하면서 좋아하는 나쁜 마음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광대뼈 아래에 볼우물이 있던 단발머리 숙희는 내 짝꿍이 되었다. 숙희는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큰 소리로 웃지 않았고 조용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곤 했다. 숙희는 기품이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전학을 가버린지라 기억에 남는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때로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짧은 시절 숙희는 나에게 그런 친구였다.
숙희보다 더 길게 내 곁에 머물러준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내 마루인형을 훔쳐갔다가 며칠 후 미안하다며 다시 돌려준 희숙이, 양계장집 막내딸이지만 맏이 같았던 미숙이, 야리야리해서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흰 얼굴의 영화, 작은 키에 야무지고 딱 부러지는 주현이, 술주정뱅이 아빠가 있었던 황미. 미와는 같은 중학교에 가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
작고 깡말랐지만 되려 언니 같았던 현주. 땡초라고 놀려도 쿨하게 넘어가는 왕눈이 용초, 언제나 스프레이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머리 포물선을 정확하게 고정시켰던 기숙이, 말끝마다 욕을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근영이, 함께 걷다가도 넹택없이 넘어져 무릎이 성할 날이 없던 유정이, 입을 다물어도 덧니가 종종 삐져나온 모습이 귀여웠던 희영이, 중학교 졸업식 사진 속에서 우리는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함께 기대어 활짝 웃고 있다. 눈부신 햇빛을 그대로 맞으면서 눈을 반쯤 감은 채 말이다.
우리는 친구이면서 같은 전쟁을 치르는 전우 같았다. 학교가 싫었고 저마다의 결핍이 있었다. 부모님의 불화, 형제자매 갈등, 외모, 학업, 경제적 여건 등 이 중 하나둘, 혹은 모든 것에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불만은 우리를 결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우리는 지치지 않고 중학교 3년을 버텼다.
중학교 친구들은 모두 실업계를 선택했고 나 혼자만 인문계로 진학하는 바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종종 야자를 땡땡이치며 함께 분식집을 가곤 했던 무용반 민희, 쉬는 시간 후다닥 도시락을 까먹었던 선아와 자영이,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던 지영이, 4 Non Blondes의 <What's up?>을 제대로 부를 수 있었던 지혜, 영화잡지를 사서 함께 스크랩했던 선경이,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의 열혈팬이었던 소연과 주영, 발랄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경화, 언제나 결과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던 은영이, 물억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거라 자타공인할 정도로 입담이 좋았던 수경이, 뭐랄까, 언니도 아닌 대모 같은 정신적 힘을 주었던 수정이, 그 외에 지금은 이름이 가물가물하지만 선명한 얼굴들로 기억에 남는 친구들.
지금도 만나고 있거나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제 내 삶에서 없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그 친구들의 자리가 있다. 친구들이 머문 자리에서 나는 치유되고 소생되었다는 사실을, 그날들을 추억하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