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때로 함께 죽는 마음이 있다

집집마다 개를 키우던 시절

by 조은영 GoodSpirit

대문을 열고 나와 공터를 지나 왼쪽으로 50보쯤 가면 두 갈래길이 나온다. 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50보쯤 가면 수카언니네가 있다. 어른들은 '수카'라는 이름을 자주 불렀다. 자주 불렀다기보다는 '수카'라는 이름의 어감이 이국적이고 강렬해서 뇌리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숙하'였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이름의 주인이 나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수카언니네 은색 철제 대문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그 집 앞이 몹시도 싫었다. 그 집 앞을 지나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집 개는 사납게 짖어댔다.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도 소용없었다. 그 개는 잠도 자지 않고 보초를 서는지 여자아이의 가벼운 발걸음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사납게 컹! 컹! 짖어댔다. 나는 그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집 대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실체를 모르는 개와 나는 언제나 은색 철제 대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내가 그 집 앞으로 다가갈 때 목줄의 쇳소리가 시멘트 바닥을 빠르게 쓸며 탁! 걸리는 소리와 함께 그 개는 쇠 목줄을 팽팽히 당기며 대문을 향해 뛰쳐나올 듯 컹컹 짖어댔다. 나는 뒤돌아 도망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서 무서워 떨고 있었다.


그 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사납게 짖어댔을까? 그 개 역시 실체 없는 내가 무서웠던 걸까? 만일 우리가 한집에 살게 되었다면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서로의 실체를 보기만 했어도 두려워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내가 나의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유년시절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개를 키웠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독일산 쉐퍼드를 키웠고 초등학교 입학즈음에는 진돗개를 키웠다. 아빠와 함께 진도에 가서 새끼개 두 마리를 데리고 온 기억이 난다. 백구 한 마리와 황구 한 마리. 백구는 장염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황구와 특히 정이 들었다. 황구의 이름은 행운을 뜻하는 럭키였다. 럭키는 나를 보면 언제나 혀를 내밀고서 꼬리를 흔들었다. 손바닥을 가까이 내밀면 긴 혀로 쓱쓱 핥았다. 혀에서 기분 좋은 살 냄새가 났다. 혓바닥이 내 손바닥을 쓸어줄 때 부드러운 솔로 닦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깨끗해진 손으로 럭키의 머리와 등을 길게 연신 쓰다듬어주었는데 그때마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애정하듯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목덜미를 감싸 안으면 내 귓가에 럭키의 따뜻하고 습한 날숨 소리가 들렸다. 그 날숨 소리 안에는 살을 물어뜯고 뼈를 부술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송곳니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전혀 두려울 게 없었다. 럭키는 사납지 않았다. 목줄도 없었고 마음 내키면 언제든 동네를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럭키는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순한 동네 개였다. 그때는 개들이 집에 갇혀있지 않고 어린아이들처럼 혼자서든 삼삼오오 모여서든 싸돌아다녀도 되는 그런 날들이었다.


그렇다고 신변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안전한 환경이라고 해도 위험은 있으니까. 단지 노출된 위험이 통제가 가능한 것인가에 따라 감지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다 노출된 위험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낮에 집을 나갔던 럭키가 한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럭키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나에게 럭키와 어울려 놀았던 절름발이개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발을 동동거리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돌리더니 나를 다시 돌아보며 끙끙거렸다. 따라오라는 신호를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안 절름발이개는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전혀 쓸 수 없는 그 개는 절뚝거리며 달렸다.


절름발이개가 멈춘 곳에 럭키가 있었다. 밭고랑에 옆으로 누운 채 입을 벌리고 혀가 축 늘어져 죽어 있었다. 사후경직으로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개, 럭키는 죽어버렸다. 절름발이개는 친구의 죽음을 나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죽음의 현장은 참혹하고 아프다. 어른들 얘기가 쥐약 때문이라고 했다. 밭작물을 훼손하는 들쥐를 잡으려고 쥐약을 넣은 음식을 먹어서라고 했다.


럭키는 떠났고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동물들을 키우지 않는다. 아이들의 간곡한 요청이나 특수상황으로 동물들을 일정 기간 돌보기는 하지만 아파트라는 가옥구조상 동물에게 양질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핑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피한다. 거기에는 어떤 동물과도 특별한 유대를 맺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때로 함께 죽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2화무성하게 자라는 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