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여도 꺾이지 않는 마음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제비꽃, 밟히면 밟히는 대로 발길 따라 퍼져나가는 질경이, 손톱만 한 계란프라이 같은 얼굴을 긴 꽃대로 밀어 올리는 개망초, 역가시가 있어 옷에 척척 달라붙는 환삼덩굴. 모두 다 이름이 있는 갖가지 식물들은 흔히 '풀'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대충 불려도 괘념치 않고 봄부터 가을까지 온 들판을 이어달리기를 하듯 무성하게 퍼져나간다. 하지만 겨울이라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두해살이식물은 가을에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면 겨울에도 잎을 건사한다. 냉이, 질경이, 개망초 등과 같은 두해살이식물은 겨울철 냉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린 잎을 지면에 착 붙여서 추위를 견딘다. 지면에 붙어있는 방사상의 잎모양이 마치 장미꽃을 펼쳐놓은 것 같다고 하여 프랑스어로 '작은 장미'를 뜻하는 '로제트(rosette) 식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추운 겨울에는 사람들도 몸을 웅크리듯 로제트식물들의 웅크림은 위로 뻗어나가지 않고 땅에 납작 엎드려 혹독한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코스모스나 나팔꽃 같은 한해살이식물은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을 틔운다. 그리고 제비꽃 같은 여러해살이식물은 겨울이 되면 지상부에 노출된 줄기와 잎은 죽지만 땅속뿌리는 죽지 않고 겨울을 나며 봄이 되면 다시 잎과 줄기를 올린다. 이러한 생애주기를 3년 이상 반복하기 때문에 여러해살이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제트식물인 민들레는 여러해살이이면서 가을에 발아를 하고 겨울 동안 잎을 지면에 펼친 채 겨울을 나기에 두해살이인지 여러해살이인지 헷갈리게 한다. 여하튼 그리하여 이처럼 다양한 풀들은 추운 겨울에도 땅 속과 땅 위에서 푸르게 살아있다.
풀은 줄기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목질화되지 않는 부드럽고 수분이 많은 초본식물이다. 그 때문에 유연함을 타고났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풀을 마구 다루어도 내 몸이 다칠 일은 없었다. 다만 종아리가 드러나면 어김없이 가시돌기나 날카로운 풀잎에 다리가 쓸려 풀독이 올라 벌겋게 붓거나 따끔따끔 가려워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풀을 욕할 수는 없었다. 풀밭에 들어가 제 멋대로 풀을 헤집고 다닌 게 누군데 누가 누굴 탓한다는 말인가.
풀독이 오르거나 말거나 나는 풀밭이 펼쳐진 그 푸른 들판으로 뛰어드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면 내 키보다 크게 자란 풀을 이어 단번에 벽과 지붕이 있는 그럴듯한 집을 지었다. 그 아래에 풀들을 평평하게 다지고 누우면 푹신한 이브자리가 되고 풀내음이 꽉 채워진 침실이 되었다. 그 푸릇푸릇한 풋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다. 소꿉놀이를 할 때는 풀잎과 꽃잎을 따다가 나물을 무치고 화전을 부치는 흉내도 냈다. 토끼풀 꽃으로 반지, 목걸이, 화관도 만들며 놀았고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둥근돌로 빻아 복숭아물을 들였다.
그런데도 내가 마음대로 꺾고 짓밟았던 풀은 이듬해 그 자리에 무성하게 다시 자라 있었다. 풀에게는 꺾여도 꺾여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 아니, 마음보다는 힘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힘을 주었겠지.
그렇게 풀을 꺾고 엮고 찧는 내 손에는 풀물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풀에게서 물들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물들었다. 꺾이지 않는 힘이 물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든 다시 일어서서 푸른 잎과 줄기를 뻗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