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그대에게
1월부터는 딸과 함께 수영을 다닌다. 초급반을 같이 등록해서 2번 강습을 받았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3~4학년 2년간 각각 2주씩 학교에서 단체로 생존수영을 배운 것 외에는 강습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그 덕분에 발차기를 잘한다고 강사가 첫날부터 킥판 잡고 팔 젓기를 같이 시켰다. 수영등록 직전 주짓수를 4개월 배웠던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트라이앵글 초크를 잘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이렇듯 의도적으로 배움을 연결 짓지 않았던 일련의 경험들은 유익이 되곤 한다. 서로 어느 시간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우린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지난주에 2번 레인으로 넘어갔다. 평영을 배우고 가겠다던 작심대로 이루어졌다. 1월부터 방학이라 1번 레인에 청소년과 청년 회원들이 늘기도 했거니와 2번 레인에 있던 몇몇 회원들은 중급반으로 빠져나가 타이밍도 좋다. 때문에 딸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좀 아쉽기는 하다. 강습 중에는 오직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레인 외에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질 여력이 없어서다. 너나 할 것 없이 딱 앞만 보고 움직인다. 2번 레인은 멈춰 있을 때가 거의 없다. 6개월 이상 된 회원들이라서 기본 영법은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을 빼기 위해 처음에는 발차기를 먼저 시킨다. 팔 젓기 없이 자유영 발차기 3번(150m), 배영 발차기 2번(100m), 평영 발차기 2번(100m), 팔 젓기를 할 때 주먹을 쥔 채로 자유영을 1번(50m) 왕복하라고 했다. 400m를 쉬지 않고 달렸더니 열이 확 오르며 숨이 차다.
'2번 레인은 지구력싸움이구나!'
마치 처음 강습을 시작했던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단계 워밍업을 한 후에도, 자유영과 배영 콤비네이션을 반복했기에 숨이 목 끝까지 찼다. 2번 레인 둘째 날에는 처음부터 자유영과 배영, 평영을 하고 접영 발차기를 했다. 하지만 첫째 날보다 훨씬 수월했다. 첫째 날에는 나 포함 3명이었지만 둘째 날에는 7명으로 늘었고 아직 평영이 익숙지 못한 강습생이 2명 있었기 때문에 앞사람이 속도가 느리면 중간에 멈춰 기다려주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그런 상황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숨 고르기가 가능해졌으니까.
한 사람이 어떤 분야든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표로 나타냈을 때 대각선처럼 쭉 오름세로 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계단 형태처럼 평평한 구간, 즉 아무 발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긴 시간을 버텨냈을 때 그다음 단계로 오를 수 있는 수직성장의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수영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발차기들이 모여 팔 젓기와 함께 자유영을 해내고 자유영의 계단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누워서 하는 발차기와 팔 젓기를 통해 수많은 불안과 물 먹기의 지난한 구간을 지나면 배영의 계단 위로 올라선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발차기와 팔 젓기와 호흡의 리듬을 탈 때까지 종합통증선물세트의 구간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평영의 계단 위로 올라선다.
나는 지금 평평한 평영의 계단 위에 있다. 평영의 계단 위에 안주하더라도 나쁘지 않겠지만 접영을 눈앞에 그리고 있으니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불현듯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실제 의미로는 희박한 희망을 빌미로 상대를 괴롭게 하는 고문 같은 행위를 빗대는 말이지만 나는 희망에 더 큰 비중을 두려 한다. 아마 이 구간은 다른 때보다 더 길 수도 있을 것 같기에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쉬엄쉬엄 해야지. 1시간 강습이 끝나면 딸과 가볍게 물놀이도 해야겠다. 멈추지 않고 하다 보면 두 달의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접영의 계단 위에서 유영하는 나를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