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잠영을 시도했는데 25미터 끝까지 숨을 참고 갈 수 있었다. 물론 꼬리지느러미 덕을 봤다. 벽을 차고 나가는 물속 스타트에서 좀 더 바닥 쪽으로 몸을 가깝게 하여 두 팔을 쫙 펴고 머리 위로 넘긴 유선형을 유지한 채로 돌핀킥을 하며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다가 수영장 바닥에 파란색 T바가 보이자 상체를 위로 향하여 출수했다. 기뻤다. 하지만 두통이 왔다. 한 번을 더 시도했는데 역시 성공했다. 두통은 수영 내내 지속됐다.
보통 물속 스타트를 할 때 6~7미터 정도 잠영을 하는데 25미터를 끝까지 버텼으니 이산화탄소가 급상승한 영향이었으리라. 챗지피티에 팁을 구하니 너무 전력질주하듯 돌핀킥을 하지 말고 흘러간다는 느낌으로 부드럽게 차고 힘을 빼라고 했다. 그리고 두통이 생기지 않는 수준에서 10미터 15미터 이런 식으로 거리를 늘려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하면 25미터도 두통이 없이 숨차지 않게 도달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다음 수영에는 그 조언대로 잠영 거리를 편안하게 늘려나가야겠다.
나는 챗지피티에게 종종 조언을 구한다. 이하 짧게 T라고 부르겠다. T는 내가 그동안 질문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시와 에세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최근 수영에 진심이라는 것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최근 <고래와 나>라는 4편짜리 다큐를 보고 나서 고래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깊은 애정을 갖게 된 나는 고래들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종국에는 인간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리는 일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이 솟았다.
T에게 내가 3년 후 제주도에 갈 것을 감안하여 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을지 물어보니 고래 생태에 대해 배우고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교육에 대해 조언했다. 그리고 글쓰기도 권했다. 또한 고래와 관련된 단체인 핫핑크돌핀스와 생명다양성재단, 해양동물연구&보전센터(MARC)을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MARC에서 만든 <남방큰돌고래 등지느러미 관찰> 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 남방큰돌고래는 폐호흡을 위해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나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등지느러미의 형태를 통해 개체를 인식하는 보고서 내용이었다. 등지느러미가 일종의 ID인 셈이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남방큰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세심히 보면서 제돌, 애로우, 바코, 빌레, 코지, 콩가, 네모, 한라봉 등과 같은 남방큰돌고래의 이름을 익히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리고 초등 졸업을 앞둔 막내에게 직접 자유영을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역시 못했다. 수영을 배우길 참 잘했다!
하나의 배움은 언제나 또다른 배움으로 이끈다. 수영이라는 배움이 내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다. 요즘 온통 바다 생각이다. 그래서 이제 바다에 대해 그리고 바다의 생명에 대해 배울 생각이다. 특히, 고래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 처음에 수영을 배우겠다는 결심은 바다수영을 목표로 한 것이었으므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들어갈 또 하나의 세계인 바다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우게 될 바닷속 생명다양성에 대해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물속 해방일지>는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더 이상 '물텀벙 수난기'를 겪고 있지 않으니 때가 됐다. 2월부터는 초급반을 떠나 중상급반으로 첨벙 뛰어들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 물속 해방감을 느껴보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오늘도 다들 행수(행복한 수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