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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or 아줌마

나를 소중히 여기자

by 권선생

오늘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사장님께서 물티슈를 건네며,

"아가씨, 이거 가져가세요."라고 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저요?"라고 되물었다.

'아가씨'. 오랜만에 듣는 낯선 호칭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내가 주로 듣는 호칭은 '어머니, '채원(지후) 엄마' 혹은 '아줌마'다.

그렇게 불린 지도 벌써 4년 차. '아가씨'라는 호칭이 낯설어질 법도 한 시간이다.

이 어색한 단어에 내가 이리도 기분이 좋은 일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는 뭘까?

그건 자기 관리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요즘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외모만으로 나이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방송인 백지연 님이 노란 드레스를 입고 환갑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60세가 되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전히 젊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녀의 얘기에 공감도 하며,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삶의 태도가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아줌마'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자기보다 가족을 더 챙기며, 정작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우리네 엄마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한 때는 그랬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화장은커녕 샤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낮잠 자는 시간을 틈타 후다닥 씻고, 관리가 편한 '똑 단발' 헤어스타일을 5년째 유지했었다.

(이제는 그래도 여유가 좀 생겼는지, 머리를 기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외출할 일이 없으니 옷도 몸에만 들어가면 대충 끼워 맞췄다. 그래서인지 엄마들 사이에서는 '등원룩', '교복룩'이라는 명칭으로 편안한 옷이 늘 유행이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청소와 빨래,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 금세 시간이 간다. 나를 위한 점심을 차리는 건 사치처럼 느껴 저 늘 점심은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아줌마들은 온통 가족을 신경 쓰느라 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엄마들은 “뼈를 갈아 넣어서 아이를 키운다.” 고 표현한다. 우리 엄마도 나를 그런 마음으로 키우지 않았을까? 진 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우며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웠을 텐데 이렇게 나 자신을 대충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다.


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나를 보면서 너부터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떠오른다. 나도 엄마의 소중한 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되뇐다.

'나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누군가에겐 대체불가한 엄마다.'

의도적으로라도 내 몸과 마음을 아끼고 돌봐야겠다. 그것이 결국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친오빠가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유치원 생일파티 때 장래희망을 묻는 친구들에게 내가 “나는 나는 될 터이다. 아가씨가 될 터이다.”라고 노래하자, 친구들이 “그래. 그래. 희은이는 아가씨가 되어라!”라고 답가를 불렀다며 웃었다. 오빠는 이제 결혼하면 그 꿈을 잃는 거냐고 놀렸지만, 나는 생각한다.


유치원 시절 나의 장래희망이었던 ‘아가씨’라는 꿈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나는 ‘아줌마’로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이 꿈은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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