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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션뷰 Nov 11. 2024

브런치에서 찾은 열정

나에게는 꼭 잘하고 싶은 3가지 욕심이 있다.


첫 번째 욕심은 운동이다. 아직 10개월 밖에 안된 응애응애 헬린이라 부끄럽지만, 아주 천천히 생기는 하찮은 근육들을 보면 너무 작고 소중해서 여기서 그만두고 도망갈 수가 없다.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작은 근육들은 내가 어떤 힘든 하루를 보냈더라도 지켜내고 싶은 존재다. 초반에 비해서 변화의 속도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조금씩 더 전진하기 위해 퇴근 후 매일 헬스장으로 향한다.


두 번째 욕심은 업무 능력이다. 5년 차 카카오 개발자로서 일하고 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아직까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내 일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마지막 욕심은 글쓰기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어느새 영화 감독을 꿈꾸는 이들처럼, 글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싹트게 되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커녕 일기 한번 제대로 써보지 않은 나는 이제껏 살아온 멘땅에 헤딩 성향 따라 일단 무작정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글쓰기 플랫폼 중에서 나는 어디에 글을 써야 할까? 개인 메모장에다 써서 기록할 수도 있지만, 나만 보는 글은 아무래도 정성이 덜 담기게 될 것 같았다.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글을 쓸 때 더 신중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들을 모아보니 브런치 플랫폼이 마음에 든다. 다른 플랫폼과 달리 작가 자격 심사를 보아 합격 목걸이를 쥔 사람들만이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이 꽤나 도발적이고 멋있다. 꼭 합격하고 싶다는 승부욕이 생겨버린 것을 보니 브런치 팀의 전략에 제대로 홀려 버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하여 나는 무작정 3편의 글을 쓰고 작가 심사를 요청했다.


미리 합격 요령을 찾아보고 심사 요청을 했으면 좋았겠건만, 심사 요청을 하고 나서야 합격 후기들과 실패 후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심사 합격 팁이 쓰여진 글들이 많이 보였는데,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글들은 'n회 탈락 후 합격' 글들이었다. 무려 7회 8회 탈락 후 재도전해서 합격한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약간의 충격과 울림을 느꼈다.

글이란 것 전에 말이란 것을 먼저 생각해 본다. 말은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인 생각, 가치관, 사상, 습관, 성격등이 모두 어우러져 단지 입 밖으로 나오는 음파일 뿐이다. 핵심은 공기의 음파가 아니라 여태 쌓아온 것들이 한 사람의 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하는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 힘든일이 될 것이다. 글도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음파가 텍스트로 바뀐 것 뿐이니까. 그렇기에 글쓰기 심사에서 탈락한다면, 몇 번의 재도전으로 그 판정을 뒤집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 네 번, 많게는 10번이나 재도전하여 끝내 합격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 헤아려 보려 애썼다. 내가 기어코 본받아야 할 자세이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재도전 글들을 보고 깨달았다. 글은 말과 다르게 주워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언제든 주워 담아 더 좋은 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이 어렵더라도 고민한 만큼 더 좋은 글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브런치 팀이 클릭을 잘 못 하신 건지 운이 좋게도 나는 한 번에 합격을 했다. 통보를 받음과 동시에 과연 내가 탈락을 했다면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네 번, 다섯 번 나를 믿고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내게 그만큼의 간절함이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합격 메일보다 더 멋지고 값진 도전을 읽은지라 기쁨보다는 부끄러움과 존경심이 먼저 다가왔다.


합격 후 둘러보는 브런치 글들은 이제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한 번의 시도에 합격해 쓰여진 글도 있고, 몇 번의 좌절을 딛고 또 딛고 일어나 쓰여진 글들도 있다.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고, 세상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온다. 어쩌면 우리가 애써 써 내려간 한 편의 글은 수많은 글들 속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하던 대로 열정을 담아 자신의 것을 창작을 해내는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의 진실된 열정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서서히 그것에 물들어 간다. 단지 몇 가지 단어로는 형용하기 힘든 뭉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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