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션뷰 Nov 10. 2024

미용실과 딸꾹질

딸국질을 멈추는 방법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을 알고 있다. 통계상 90% 확률로 멈출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신체 구조가 다르기에 실패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귀여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딸꾹질하던 미용사 이야기와 함께 딸꾹질 멈추기라는 소소한 인생 스킬도 공유하려 한다.

단, 스킬 시전의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미용실은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자주 방문한다. 남성은 보통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한 달에 한번 정도, 일 년에 총 12번 안팎으로 방문한다. 반면 여자들은 스타일에 따라 꽤나 차이가 나는데, 평균적으로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방문에 1년에 약 6회 정도 미용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보통 남성의 평균보다 조금 더 자주 간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어느 정도 길어지면 땀에 젖어 불편하기 때문에 3주에 한 번씩 꼭 미용실을 찾는다. 1년에 17번 정도 방문하는 셈이다.


어느 것이든 자주 접하고 경험하다 보면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생기기 마련인데, 미용실을 자주 가는 나에게는 그런 눈 따윈 없다. 실력 좋은 미용사를 찾아보기도 귀찮을 뿐더러 인기 많은 미용사는 값이 비싸다. 같은 커트를 하더라도 비용은 배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결정적으로 미용사의 실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내 꼴뚜기 외모를 공작새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단지 머리 이쁜 꼴뚜기가 될 뿐이다. 나는 빠른 자기 객관화로 인해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있다.


그리하여 31년 동안 내가 세운 작전은, "적당한 가격의 남자 미용사 한 명만 판다"이다. 너무 초보 미용사는 피하되, 너무 비싼 미용사는 부담스럽다. 적당한 가격의 미용사를 찾아 단골이 되어 내 스타일을 그에게 학습시키는 편이 실패 확률을 낮추는 방법이다. 물론 그 미용사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을 받기 때문에 나를 인지 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이사를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미용실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5~6번 정도 방문하면 내 스타일을 학습하는 듯했다. 남자 미용사만 고르는 이유는 단지 남자가 남자 머리를 잘 알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은 집에서 5분 거리의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이다. 여기로 이사 온 지 1년 반 정도 되었으니 26번 정도 방문 한 셈이고, 26번 동안 한 남성에게 내 헤어를 맡기는 중이다. 그 미용사는 덩치가 크고 미소가 부드러우므로 여기서 그를 '호동'이라 칭하겠다. 호동과 나는 보통 3주마다 일요일 4시쯤 미용실에서 만나곤 한다. 26번이나 만났으므로 자연스레 서로의 고향, 관심사,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 알게 되었고,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다음 달은 어떻게 보낼 건지도 묻고 답한다. 나는 평소 말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호동의 포근한 미소를 보면 편안해서 나도 모르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다만 서로의 이름과 나이는 모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는 보통 가장 먼저 물어보는 두 가지지만, 모른다고 해서 우리의 대화에 불편함은 없기 때문이다. 통성명이란 이처럼 별거 아닌 허례 같다가도, 오히려 특별히 의미 있는 행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호동이 유난히 말수가 없었다. 많이 지친 날인가 싶어 나도 괜히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럴 때는 그저 내 앞에 길게 놓인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은 열심히 내 머리를 손질해 주는 미용사, 뒤에서 걸어 다니는 손님들 혹은 분주히 움직이는 여러 미용사들, 그리고 기타 온갖 인테리어 소품들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대신 앉은 손님의 눈높이에 딱 맞게끔 붙어있는 미용 서비스 홍보 문구를 본다. "OOO 손상 케어 서비스 6회 30만원, 12회 50만원, 18회 70만원". 몇 년째 미용실에 갈 때마다 변하지 않는 이 문구를 나는 딱히 본다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때, 호동이 큰 덩치를 들썩이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덩치에 몹시 어울리게 딸꾹 하는 소리도 컸다. 20초 주기로 딸꾹대는 그는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 같자 내게 웃으며 사과의 말을 건넨다.

어우 갑자기 딸꾹질이.. 죄송해요 근데 너무 힘드네요

맞다. 어떤 딸꾹질은 아프고 괴롭다. 횡격막 근육의 반복적인 수축과 호흡 리듬의 불규칙성이 유달리 심한 딸꾹질이 그렇다. 오늘은 호동과의 이야기를 줄여보려 했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내 스킬을 전수해 주었다.

제가 딸꾹질 멈추는 방법을 잘 알거든요. 성공률이 거의 90%는 돼요. 자세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요. 먼저 똑바로 선채로 물을 입에 한 모금 머금고, 배꼽인사하듯이 상체를 90도 숙여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물을 꿀꺽 삼키세요!

그 말은 들은 호동은 머릿속으로 자세를 그려봤는지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당장은 그렇게 하는 게 부끄러운지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계속 내 머리를 손질해 준다. 열심히 설명했는데 호동이 실제로 액션을 취하지 않아서 나 역시 약간은 머쓱했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도저히 딸꾹질이 멈추지 않자 호동은 웃으며 내게 조심스레 양해를 구한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

호동은 내게 무엇을 하러 가겠다고 말하지 않고 자리를 급히 떴다. 하지만 나는 그 자세를 취함으로 딸꾹질과의 전쟁을 끝내러 간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호동이 향한 곳은 정수기가 있는 탕비실이었다. 탕비실은 반투명 유리로 가려져있기에 내 자리에서는 호동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큰 실루엣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입에 털어 넣고, 갑자기 상체를 숙인다. 마침내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꿀꺽.
3초의 정적 후 호동은 다시 똑바로 서서 10초간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다. 아마 딸꾹질이 멈췄는지 기다려보는 중이었을 것이다. 10초가 지난 후 호동은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내게 걸어온다.

어휴 손님 제가 방금 손님 말씀대로 물을 마시고 왔는데요. 진짜 멈춘 것 같아요. 이제 살겠어요. 감ㅅ...

라고 말을 끝맺으려는 순간

딸꾹!!!

기존보다 3배 큰 딸꾹 소리가 났다.

우리 둘은 여태껏 이야기하면서 웃어본 적 없는 크기로 함께 웃었다. 호동은 그 이후로도 내가 미용실을 떠날 때까지 딸꾹질을 멈추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딸꾹질을 하는 동안 고통보다는 웃음이 먼저 찾아오게 되었다.


아, 글 서두에 딸꾹질을 90% 멈추는 스킬을 알려주겠다고 했으면서 부작용을 알려줘 버렸는데..
아무튼 진짜 멈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