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정의감
때는 ’24년 5월 수사팀 사무실,
조용했던 적막을 깨고 요란스럽게 수화기가 울렸다.
중저음과 구수한 사투리는 수화기 속 사람이 40대 후반의 남성 (A)쯤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상담할 게 있다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제 여동생이 이혼을 하려고 합니다’
상담의 주된 내용은 형사 사건이 아니었지만,
여청수사팀 업무의 특성상 이혼의 동기는 어느 정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로 여동생이 이혼을 하려고 하는가요?‘
여러 가지 이야기 중 수사관의 귀에 박히는 내용은 부부의 딸인 고등학교 2학년 생이 전라도로 가출했다는 사연이었다. A의 조카 되는 소녀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1년 전 A의 여동생과 남편이 모종의 이유로 다투다가 홧김에 운전대를 잡고, 서로 신고를 하여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모종의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A에게 이야기를 풀어갈 기회를 주며 조심스럽게 A의 여동생 부부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던 중 내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말이 나왔다.
‘매제가 애들한테 몹쓸 짓을 했거든요 ‘
몹쓸 짓? 아버지가 아이한테 몹쓸 짓이라고 할 만한 게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주저하는 A에게 직설적으로 묻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려 물었다.
머뭇거리던 A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매제가 술을 먹고 오더니 조카 성기를 만지고는 ‘너네 엄마는 이렇게 하면 좋아하던데’라고 했다네요’
나는 A의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던 A에게 사건처리를 해야 한다라고 하자 A는 그렇게 일이 커지는 건 원하지 않았는다며 고사했다.
다소 심각해진 나의 말에 A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며 막무가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이었다. 녹음도 되지 않는 경찰 유선전화와 나의 구두로 된 진술만으로 사건 인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일반적으로 민원인이 사건처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느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절차적인 설명만 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 아이의 비극적인 아픔을 알아버렸고
그 아이가 커서 자신의 비극을 알고도 눈 감았던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원망하면 어쩔까.. 하는 우려가 마음속으로 몰려왔다.
무엇보다 타지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경찰과 어른들이 너의 아픔을 알고 있노라며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들어오는 발생과 고소 고발 사건에도 킥스 사건 넘버링은 높아져 갔지만,
당시 나의 마음속 알 수 없는 정의감이 작은 불씨를 타올렸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은 뒤 남성이 말했던 음주운전 사건 기록을 찾았다.
당시 기록의 종결 내용에는 ’ 딸에 대한 성추행’으로 인한 부부의 음주운전 동기가 명백히 기재되어 있었고, 성추행건에 대해서는 A의 여동생이 추후 고소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사건이 종결되어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국가는 1년 전부터 소녀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 고소를 하겠다는 소녀의 모친은 어떤 국가기관에도 소녀의 피해를 다시 알리지 않았다.
국가도,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야 할 엄마도,
소녀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소녀의 모친도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여 소녀의 피해에 대한 신고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고소고발진정의 방법으로는 사건 진행이 되지 않았다.
나는 기록을 본 뒤, 직속 선배에게 사건 경위를 말하고, 팀장에게 수사의 필요성을 보고한 뒤 ‘첩보’를 인지하여 조사에 착수하였다.
수사의 첫 기본은 인지의 경위이다.
그래서 나는 제일 처음 사건을 알려준 익명의 남성을 찾아 사건 처리에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남성은 엮이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로 쉽사리 경찰에 구체적인 진술은 해주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계속되는 나의 설득 끝에 남성이 가명으로 조사는 받겠다는 동의에 사건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두 번째는 피해자 조사다.
이제 피해 소녀에 대해서 수소문해야 했고,
각종 경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수합하여 결국 소녀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랑 생활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고심하게 되었다.
소녀는 상냥하고 다정한 임시보호자 밑에서 너무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건을 수사하면서 소녀의 아팠던 기억을 들추어내고, 또다시 상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이 들었다.
우선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에게 바로 접근하지 않고, 임시보호자를 통해 아이의 의중이 어떤지 물었다.
임시보호자는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렸다는 듯 반기며 아이에게 조심히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시간을 조금 달라며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임시보호자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 아이가 어릴 적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형사님‘
문자메시지를 받은 직 후, 나는 임시보호자에게 아이와 시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임시보호자가 알려준 날짜에 후배 여경에게 동행을 부탁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는 전라도 남원,
시내에서도 30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거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수밖에 없을 만큼 작았다.
소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는 이제 태어난 지 6개월쯤 됐을 법한 누렁이가 왈왈 짖으며 문 앞에서 우리를 반겼고, 그곳에선 장작 태우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누렁이가 짖자 인기척을 느낀 임시 보호자는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마중을 나왔다.
꺼무스름하게 탄 얼굴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4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입은 옷을 툭툭 털며, 농사를 짓고 있어서 라며 머쓱한 듯 쑥스러운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임시보호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이 소녀를 돌보고 있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횡설수설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자신과 소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귀농 전에는 전라도 남원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던 임시보호자는 소녀의 모친과 친구였고,
소녀가 미용에 관심을 가지며 임시보호자와 연락이 잦아져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내가 보고 있던 소녀는 임시보호자 앞에서 ‘과일이 달지 않다, 이모는 운동을 좀 해야 한다’ 등 서스름 없이 임시보호자를 대하며 잘 따르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은 친한 언니 동생 같기도 하고, 딸과 엄마 같기도 하였다.
이를 흐뭇하게 보던 나에게 임시보호자는 본격적으로 자기가 소녀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소녀는 가출한 직후 보호시설에 입소하여 생활하였고, 시설 생활이 너무 힘든 나머지 자신의 가출 사실을 임시보호자에게 알렸다고 한다.
임시보호자는 가출의 이유를 듣던 중 소녀의 성추행 피해사실을 듣고,
그 즉시 소녀의 부부에게 전화로 쌍욕을 퍼붓고 절연하였다며 나에게 싱긋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전라도 남원으로 자신이 소녀를 데리고 왔다며, 소녀가 작은 시골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앞선 이유를 듣고 힘들었을 소녀를 생각하니 단도직입적으로 피해 사실을 묻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분위기를 풀고자 임시보호자가 차려주는 집밥을 함께 먹으면서 일상적인 소녀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소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록 기다렸다.
피해 경위를 얘기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소녀는 초1 때부터 중2까지 부친으로부터 상습적이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 소녀에게는 2명의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 그 여동생들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 부친 외에 모친에게도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 부모는 아이들을 병원에 장기간 입원시켜 보험금을 받았다는 사실, 소녀는 부모를 ‘그 사람 그 새끼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등이었다.
위 이야기들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다른 피해자도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분노하게 했다.
조사를 마치고, 대구로 온 나는 즉시 모친에게 아동학대 피의자로서 출석요구하여 이 사건 학대의 사실, 부친에 대한 추행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다.
소녀의 모친은 자신이 처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자 다급해졌는지, 스스로를 변호하며 남편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서 모두 진술하였다.
그 직후 소녀의 부친은 체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지방법원 판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부친(이하 ‘피의자’ 라 한다)을 체포하였다.
피의자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매일 술을 마시며, 술을 먹은 뒤 3명의 딸들을 강제로 추행한 사실을 얼핏 기억한다며 포괄적으로 혐의 인정하였다.
나는 피의자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사는 피의자가 포괄적으로 혐의를 시인하고, 가출한 소녀 이 외의 2명의 딸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였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되는 것)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볼 때 남은 2명의 딸에 대한 생계를 고려한 검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사건 피의자는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수갑을 차고 연행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는지, 가출한 딸에게 미안해서인지,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피의자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그 어떤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무책임한 피의자에 대해서 동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무언의 죽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아이들에게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기고 떠났다.
그는 생전 욕망스러운 손으로 딸들을 상처 입혔으며, 사후에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딸들에게 다시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역대급 쓰레기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수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혹시 내가 좀 더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대했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는 죄책감을 몰라도 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하루이다.
최근 읽은 저서 중 [어떤 양형 이유]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
잔인한 처벌은 정의가 바라는 바가 아니고, 의도와 결과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의 의도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었을 때 자신의 슬픔을 모른 척한 어른을 원망하지 않게 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지나친 정의감에 휩싸인 수사관이 무리한 수사를 통해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정의가 후회되진 않지만, 아이에게 준 슬픔에 나의 몫이 있다는 것은 너무 미안하고 잔인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