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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잊드라 Nov 12. 2024

금보다 귀한 덕질의 가치

다가오는 최애를 온 마음으로 환영해

얼마 전에 큰맘 먹고 금붙이를 샀다.


십 년 만에 사는 금이라서 사도 될까부터 시작해서 뭘 사야 후회 없는 선택일까 고민을 고민을 엄청 했더란다. 후보를 줄 지우고 직접 가서 착용해 보고 하나씩 후보에서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모델을 선택해서 예약하는 순간에 두근두근 했다. 할인해서 90만원, 나에게는 큰 사치였기 때문이다.   


내심 기대했다.

저게 내 손으로 들어오면 90만 원어치 행복해지겠지?


얼마 전 작은 상자에 담긴 금붙이를 받았다. 그것이 내 손으로 들어오고 나는 90만 원어치 행복해졌을까?

어라?! 놀랍게도 그만큼이나 행복해지진 않았다. 물론 영롱하다 예쁘다 생각했지만 일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만큼 예뻐졌냐, 그건 더욱 아니었다. 그저 평소의 나에 작은 금붙이를 덧붙인 상태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삶이 굉장히 다채로워졌다. 맥박이 빨리 뛰고 두근거리고 설레고 긴장되고 늦덕이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졌다. 심지어 잠도 빨리 깬다. 숙면을 못하는 느낌 같기도 하다.

4만 원대로 최애 DVD를 주문하면 그걸 주문한 순간부터 설렌다. 주말에 그거 봐야지. 사진은 어떤 게 있을까, 라면서 두근거린다. 2만 원대의 상영회를 신청하면서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덜덜 거리고 온갖 감정을 다 느꼈다.   

90만 원짜리 금덩이보다 4만 원대 DVD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이준호 콘서트 [다시 만나는 날] DVD




이번에 깨달은 것은

금보다 덕질이 가성비 좋은 행복이다!

라는 것이다.


그 이외의 덕질의 좋은 점 몇 가지.


첫째. 들을 노래가 생겼다.

최근까지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웡카 ost였다. 유튜브 뮤직을 쓰고 있는데도 딱히 들을 노래가 없어서 밖에서 에어팟을 잘 안 썼다. 최신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니고 과거 노래는 식상해서 듣고 싶은 음악이 없었다.

지금은 에어팟이 없으면 휴대폰 놓고 나온 것처럼 불안할 정도로 늘 소지하고 음악을 들으며 다닌다. 그 어떤 길도 최애 목소리와 함께 하면 조금 더 흥겨워지는 마법.

들을 노래가 10년 넘게 쌓였기에 늘 새롭다. 몇 년 만에 YT뮤직과 에어팟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세상과 차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끄럽고 더운 길을 지나갈 때 노이즈캔슬링을 하면 오직 좋아하는 음악과 그 목소리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험난하고 복잡한 일상에서 갑자기 나와 최애만 똑 떨어진 느낌.  


둘째. 금세 기분 좋아지게 하는 방법 하나를 획득했다.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열면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쓸쓸할 때 우울할 때 열받을 때 혼자 밥 먹을 때 나 홀로 조용히 미타임을 보낼 때 좋아하는 영상 하나를 꺼내어 돌려본다.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하루는 일이 너무 힘들고 내 능력치에 의심이 들고 직장에서 시시콜콜 속시원히 말할 동료도 없어 외로운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지쳐서 돌아갈 퇴근길이 룰루난나 신이 났다. 집에 가서 혼밥하면서 최애 영상 봐야지. 덩실덩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란다. 나 지금 정말 행복하구나.


셋째, 온갖 SNS와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X(트위터)의 존재는 알았지만 필요하지 않았고 필요성조차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 처음으로 트위터에 들어가서 새로운 소식을 훑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든 검색은 네이버 아니면 다음이었는데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게 많았다. 덕질은 트위터 소식이 제일 빠른 것 같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자꾸 보니까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것 같았다.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 카페, 인스타그램, 버블, 온갖 SNS의 필요성과 쓸모를 알아가고 진땀 흘리며 배워가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게다가 이준호는 밈에도 능하기 때문에 준호의 스토리를 보다 보면 저절로 몇 가지 유행하는 밈을 습득하게 된다. 이게 뭐지 무슨 뜻이지 하다 보면 새로 유행하는 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쁘다 바빠! 준호 사회.  


넷째, 근로의욕이 생긴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덕질에 돈을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점점 하나씩 작지만 돈 쓸 일이 생겼다. 올해 복직하면서 직장에 돌아오기 너무 두려웠고 다시 휴직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는데.

버블을 구독하며 다짐한다. '열심히 일하자.'

DVD를 구입하며 생각한다. '돈 벌어 다행이다.'

영화표를 끊으며 위안한다. '나중에 한 달 더 일하면 되지 뭐.'

 

다섯째,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예전에는 아이돌 홈마나 스케줄 따라다니는 팬들 보며 뭐 저렇게까지 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바뀌었다. 주변에서 아이돌 얼굴 넣어둔 물건을 발견하면 물끄럼히 바라본다. '저 아이템 신박한데? 좋은데? 저 아이는 장원영이 최애구나.'

다른 최애에게 흠뻑 빠져 있는 수많은 글도 웃으며 정독한다. 이렇게 덕질하시는구나 하면서.  

세상의 수많은 덕질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그 상황이 되어봐야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섯째, 현생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극 초반에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현망진창이었다.

(현생 = 온라인 이외의 실제의 삶 / 현망진창 = 현생이 엉망진창임)

지금도 덕질 전보다 보람차게 인생을 살고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정해진 에너지가 있는데 새로운 사랑에 에너지와 시간을 과다 지출하고 있으니 남은 에너지가 부족할 것이다. 그렇기에 책잡히지 않으려고 남은 시간 열심히 살고 있다.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을 빨리 마친 후에 유튜브에서 최애 영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중에 혹시라도 '네가 아이돌에게 빠져서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냐.'라는 원망을 들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에 가수 팬클럽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이 좋았었다. 엄마한테 "네가 팬클럽 한다고 싸돌아다니느라 성적이 떨어졌잖아!"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기를 쓰고 공부했었다. 요즘 그때 생각이 종종 난다.


일곱째, 남편이 짠해졌다.  

나에게 최애가 생기는 걸 남편에게 비밀로 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우울한 표정으로 묻는다.  

"당신은 낙이 뭐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보, 내 낙은 덕질이야. 나는 최애만 생각하면 힘이 나서 현생 힘들어도 참을 수 있고 웃음이 나.'

라고 생각만 했다.

짠한 당신... 낙도 없고..

남편 몰래 덕질하는 게 미안해서 남편에게 한번 더 웃어주고 한번 더 다정하게 말한다. 어제도 남편에게 살짝 열받는 순간에 내 마음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짠한 사람.. 낙도 없어..


여덟째, 인류애가 충전된다.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걸까? 자식을 엄마와 아빠가 비슷하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새끼 이쁜 거 남편이 제일 공감하니까.

엄마 아빠를 형제자매가 비슷하게 사랑할 수 있겠지? 우리 엄마의 사랑과 헌신은 나를 빼면 내 동생이 제일 잘 알지.

이렇게 피로 맺어진 가족 말고 쌩판 남인 타인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게 참 묘하고 신기하다. 최애의 여러 모습과 이모저모에 똑같이 반하고 환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해도 이해 못 할 최애에 대한 사랑을 100퍼센트 이해하고 오히려 나보다 더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난다. 그냥 혼자서 좋아하는 거랑 덕질메이트랑 같이 이야기하는 거랑 덩실덩실 신남의 크기가 다르다. 우리는 함께 할 때 더 크게 응원하고 더 용기 있게 행동한다. 

(덕질메이트=같은 연예인을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 덕메라고 줄여 말함)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이라 최애가 무대에서 여자 댄스랑 서있는 것도 보기 싫어 해당 영상은 스킵할 정도인데...

덕메의 이준호 무대인사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새로고침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가 신기하다. 같은 사람을 사랑하면서 이렇게 재미있게 응원하고 서로를 독려해 줄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 나와 내 가족 챙기기도 정신없는데 가상의 인물과 같은 연예인에게 빠져 살아도 되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도 덕질의 장점을 이렇게 많이 찾았습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연예인 좋아하는 게 인생소비 시간소비인 것 같아서 일부러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빠지고 보니 덕질은... 행복이더라고요.

이 세상 힘들고 답답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최애 얼굴 보며 웃음 짓고 최애 목소리 듣고 마음이 노곤노곤해지면서

오늘 하루 버티는 힘이 되었다면 그 얼마나 행운인가요.


다가오는 최애를 거부하지 마시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세상이 한결 아름다워집니다.


그 행복은 금붙이에 비할 데가 아니에요.





(2024.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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