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끝까지 이준호 해도 되니?
2004년 11월 25일 한류 열풍의 간판스타인 '욘사마' 배용준이 일본 나리타 공항을 마비시켰습니다.
이날 그를 보기 위해 공항에 모여든 인파는 1979년 공항 개설 이래 최대의 인파로 기록을 세웠습니다.
나리타 공항 개장 이래 최고의 패닉 상태라고 합니다.
일본 여성 팬들이 욘사마에 열광한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난 배용준에게 큰 관심은 없지만 좀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 배우를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나 좋아하다니.
겨울연가 촬영지를 투어하는 일본 관광객을 보며 내가 딱히 기여한 것은 없지만 어린 마음에도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저 올림픽 종목에서 한국이 메달 딴 것처럼 먼발치에서 자랑스러웠던 욘사마를 2024년에 떠올린다.
오직 욘사마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왔던 수많은 여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13살 차이가 나는 젊고 예쁜 한국 연예인과 결혼한다는 그의 기사를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과거의 찬란했던 짝사랑을 이제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몇 년 전에 일본 작가인 사노요코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욘사마로 시작하여 한국으로 드라마투어 관광을 왔던 과정을 에세이에 남겼었다.
책 읽을 당시에는 그저 피식 웃으며 남일로 여겼다.
아아, 여기서 욘사마가 나타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헬리콥터를 타고 왔는지 어깨에 날개가 돋아 날아왔는지 여자로부터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안경 너머 혼신의 힘을 담은 눈빛으로 훌륭한 머플러를 두르고 서 있는거다. 그것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타난다. 그러면 스토커 남자는, 그는 또 어디서 나타난 건지 건물 구석이나 나뭇가지 뒤에서 얼싸안은 둘을 지켜보고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줄곧 지켜본다.
- 사노요코 [사는 게 뭐라고] 116쪽
몇십 년 전 욘사마를 사랑했던 그녀들의 안부가 궁금한 것은
내가 요즘 우주대스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덕부정기를 거치면서 자꾸 욘사마가 생각났다.
아니, 욘사마를 사랑하며 소녀처럼 환호하던 그녀들이 궁금했다.
연예인을 사랑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인생낭비라고 여겼는데
멀쩡한 연예인은 찾기 어렵고, 결국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예능보며 히히덕거리는 것도
시간이 남고 남아 정말 할 게 없어도 선택하지 않은 취미였는데
어느 순간 자꾸 그만 생각나고 그만 보이고
온갖 드라마, 예능과 함께 하며 뇌의 대부분을 점령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런데 시간 보낼 때가 아닌데, 하다가도 유튜브에서 새벽까지 몇 날 며칠을 떠돌며 연예인 영상에 시간을 바쳤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앞서 사랑에 빠졌던 욘사마의 그녀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오겡끼데스까?!
잘 지내시나요?
욘사마를 사랑했던 지난 시간과 열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결국 어린 한국 여자와 결혼할 그를 사랑했던 지난날을 후회하시나요?
내 삶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였지, 라고 애틋하게 추억하시나요?
그가 있어 힘들었던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어, 고마운 마음으로 남겨두었나요?
알려주세요 선배님들.
저...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지금.. 입덕해도 될까요?
욘사마의 그녀들이 시시때때로 생각났던 입덕부정기를 가볍게 지나갔다.
입덕문이자 출구를 닫고 나의 온 마음을 그에게 내어주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덕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욘사마의 그녀들에게 묻는 안부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미래의 덕질 후배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을 보라고.
나는 우주대스타를 이렇게 사랑했으며 이렇게 기억하고 있노라고.
아름다운 공공재를 사랑한 결과는 지금과 같다고.
그래서 덕질 기록을 남긴다.
매일 마음과 시간을 그에게 쏟는 나와
난 대체 그 시절에 뭘 했지 물을 미래의 나와
오겡끼데스까를 외칠 덕질 후배들을 생각하며.
나…
끝까지 이준호 해도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