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백 >
‘사각사각’
소리가 거칠다. 무늬가 박힌 한지 편지지 때문인가 아니면 길이 덜 들여진 펜촉 때문인가?
30년 가까운 회사생활을 끝내고 내 사업을 할 때였다. 그럭저럭 사업도 잘되던 중 헤드헌팅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모 회사에서 사업본부장을 구하는데 내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나는 회사 생활하며 경쟁상대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기에 다시는 회사생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번에 제안받은 자리는 전국의 영업 조직뿐만 아니라 여러 개 부서까지 관장하므로 범위가 예전 직장에 비해 넓었다. 일 욕심이 도졌다. 지금의 사업체를 아내에게 맡기는 게 부담이 되었지만, 내 생애 마지막 회사생활에 온 열정을 쏟아붓고 싶었다.
입사 즉시 사업본부 현황파악에 들어갔다. 회사는 매출 순위로는 업계 상위였고,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맡은 사업본부는 예외였다. 부실과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사업본부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를 넘나들었고, 직원들은 타 사업본부에 비해 진급도 늦고 연봉도 낮았다. 일에 대한 의욕이나 창의력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 잘못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잠시의 후회가 있었지만 바로 도전 욕구가 발동되었다. 전 직원 워크숍을 열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도출시키며 직원들을 몰아붙여 실행에 옮겼다.
조금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정상궤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매출과 손익이 개선되고, 그에 따라 진급과 급여가 정상화되면 직원들의 사기도 오르겠지만, 그것은 중장기 과제였다. 장기간의 침체로 열패감에 빠진 직원들에게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느 회사 CEO가 직원들 사기 진작을 위해 손 편지를 썼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래, 나도 해보자!’ 직원들 마음을 움직여 적진을 향해 돌격하게 만드는 감성적 접근이 필요했다.
이런 편지에는 미끈거리는 볼펜보다 정성이 담긴 것처럼 보이는 만년필이 제격이었다. 관리과 직원은 나의 의중을 아는 듯 평범한 편지지 대신 한지로 된 편지지를 준비했다.
나도 오랜만에 만년필을 구입했다. 늘씬한 몸피에 철로 된 외투를 입은 녀석을 골랐다. 손에 잡히는 감촉도 좋았다. 직원들이 백여 명 정도이니 편지도 백여 통만 쓰면 되겠거니,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편지지 여러 장을 구겨 버렸다. 직원들이 받아보았을 때 철자나 맞춤법, 띄어쓰기와 문장 오류를 보면 신뢰가 떨어지므로 조금이라도 틀리면 바로 쓰레기통에 던졌다.
여기에 다른 복병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었다. 서너 개 형식을 만들어 수신인 이름만 달리 적으면 편하게 쓸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직원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없었다. 그러자면 말단 직원까지 개개인의 속사정도 알아야 했다.
부임한 지 수개월이 지났기에 개개인의 실적과 업무 성취도, 일에 대한 의욕이나 회사 충성도 등 회사와 관련된 내력은 꿰뚫고 있었지만 개인사까지는 세세히 알지 못했다.
회사일 열심히 하라는 것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감동을 주려면 직원 개인과 가정을 터치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간부급부터 신입 직원까지 개인 사정을 파악하며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하루에 두세 통씩 써서 보냈다. 얼마 지나며 일주일에 대여섯 통 쓰기도 버거웠다. 나의 격무가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
몇 통쯤 보냈을 때였나, 회사 목표 달성을 위해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였던 직원들이 한 여인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만년필의 감촉도 부드러워졌다. 인사고과 점수가 낮은 직원들도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그들이 느꼈을 심적 고통이 조금씩 다가왔다.
편지 쓴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집으로 편지 한 통이 우송되었다. 붓펜으로 정성 들여 쓴 것이 분명한 손 편지는 모 부장의 부인이 보낸 것이었다. 부인은 나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말미에 남편의 지방 발령을 재고해 달라는 부탁도 넣었다. 한참을 지나 직원들 말을 들으니 부인들이 편지를 뜯어본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 오는 편지는 대체로 반갑지 않다. 더군다나 남편 회사 본부장이 직접 보냈으니 걱정을 안고서 먼저 개봉한 것인데 읽고 나서 안심했단다. 그 부인도 이 경우였다.
손 편지를 보내면서 직원들의 답장도 이어졌다. 이메일이나 프린터로 출력해서 보낸 경우보다 손 편지로 보낸 직원이 많았다. 스트레스로 찌그러진 내 얼굴도 조금씩 펴져 갔다. 백여 통 편지 쓰기가 후반으로 가며 펜촉은 사각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편지지 위를 미끄러져 갔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월이 흘렀을 때다. 당시 직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기 전에 복사해 둔, 내가 쓴 백여 통의 편지를 읽어보았다. 직원들 이름이 반갑게 다가오며 편지 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직원들의 답장 편지를 읽어보았다. 내용은 대부분 ‘감동적이다’, ‘회사일 열심히 하여 보답하겠다’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꺼림칙한 뭔가가 마음 한편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내가 보낸 편지에 감동하여 답장을 보냈을까. 잘 보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인사권을 가진 직장 상사에게 잘못 보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인사권자는 나와 내 가족의 명줄을 쥐고 있으므로 나라도 자기 방어적 수단으로 답장을 썼을 것이다. 나도 그럴진대 그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과연 그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온갖 폼을 잡으며 직원과 가족을 위하는 척했지만, 가뜩이나 회사생활에 지친 직원들에게 부담을 준 것이리라.
나는 지금껏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손 편지를 썼다는 만족감에 취해 있었다. 그건 아니었다. 내가 세운 사상누각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