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다. 매 연초가 되면 먼길 떠날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에도 네 번째 장거리 도보여행을 앞두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길 따라 내 두 발로 우리의 산하를 디디며 걷는 즐거움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러나 무거운 배낭은 걷는 내내 어깨와 온몸을 누른다. 부실한 발과 무릎의 통증도 늘 따라다닌다. 체력이 떨어질 때는 주저앉고 싶다.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에 두 끼도 찾아 먹기도 어렵다. “남들은 삼보일배도 하는데 걷는 게 뭐가 대수랴”라며 나 자신을 꾸짖었다. 이미 역을 떠난 기차는 멈출 수 없다. 사업장을 아내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스스로에 묻는다. 왜 떠날까? 가수 양희은 님의 노래 <배낭여행>에 일부 그 답이 나와 있다. “제자리에 머물면서 왜 알 수 없는 걸까, 멀리멀리 떠나야만 왜 내가 잘 보일까?” 내 경우에는 멀리 떠나도 여럿이 가거나 혼자라도 휴양지에 머물고 있으면 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나 홀로 장거리 도보여행에서는 말을 나눌 대상이 없으므로 온전히 나 혼자만의 세계에 잠길 수 있다. 힘들면 심신이 단련된다. 나에게 도보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나라는 위인이 여러모로 부족해서 그런가, 다녀와서 얼마 안 가 다시 나의 부족함이 보인다. 이 여행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다.
올해엔 국토를 횡으로 걷고 싶었다. 지난해 국토횡단을 생각하며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길을 걷고 싶었지만 여러 검토를 거쳐 포기했다. 사전에 코스 정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지도에는 길이 나와 있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통행이 금지된 길인지 알 수 없었고, 하루 걸을 거리를 정하기도 어려웠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숙박과 체력이었다. 25~30km 걷고 나서 숙박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남방 한계선 철책과 가까운 곳에는 찾기가 어렵다. 현실적으로 나에게는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몸통인 충청도와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것도 검토하였으나 국토종단 코스와 겹치고 걷는 의미도 희미해 보였다.
그렇다면 남해안과 가까운 길을 걷자. 국도 2호선이 목포에서 부산까지 이어지지만, 진도대교가 놓인 후 육지화된 진도가 목포보다 더 서쪽에 위치하므로 진도~부산 코스가 국토횡단에 더 적합하다. 아니 그보다 304명의 목숨이 스러진 팽목항에 가야만 했기에팽목항~부산 코스를 택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큰 아픔으로 기억되는 팽목항. 그곳에 가는 것은 나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지만, 게으름 탓에 차일피일 미뤄왔다. 세월호 참사가 난 4월 16일에 팽목항을 찾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아랫녘 횡단이므로 지나는 지역이 전라남도, 경상남도와 부산이 전부다. 전남 진도 팽목항을 출발하여 해남 강진 장흥 보성 벌교 순천 광양을 거쳐서 경남 하동 함안 마산 봉하마을 김해를 지나 부산의 초량 소녀상에서 마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