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걸으면서부터 트럭과 버스, 승용차가 내 옆을 질주한다. 이어 산업단지 인도가 나타나 안전하다. 가로수 하나 없는 길에 아침 햇볕이 따갑다. 우산을 펼쳤다.
도보여행이란 게 육체적으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발에 생기는 물집은 심각하지 않다. 발바닥 쑤시는 것도 참고 걸으면 된다. 아침 점심 식사가 부실하여 자주 허기지면 물 마시면 된다. 기운이 빠질 땐 악악 소리 지른다. 그러나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나며 시큰거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다. 이럴 땐 속도를 늦추고, 무릎을 약간 구부린 채 걷는다. 무릎 보호대는 필수다.
땀 냄새와 친해진다. 배낭은 등에 밀착해야 무게감이 덜하지만, 등과 엉덩이는 땀으로 젖는다. 숙소에서 속옷 상의를 벗어보면 가슴에 흰색 줄무늬가 브이 자로 길게 선을 긋고 있다. 소금 띠다. 쉴 때는 양말을 벗는다. 길가 적당한 곳에 앉아 양말 벗고 빵을 먹는다. 오후가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재를 넘을 땐 땀이 뚝뚝 떨어진다. 숙소에 도착하면 우선 빨래부터 한다. 매일 빨지만 땀 냄새와 쉰내가 따라다닌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지만, 몸은 비와 땀으로 젖다가 한기를 느낀다. 휴식 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종종 굴다리 밑으로 들어간다. 이렇듯 도보여행은 무척 힘들다.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가 돈 줄 테니 하라 하면 중도에 집에 올 것이다.
그럼 뭐가 좋을까. 장거리 도보여행은 나 자신에게 낭만적이다. 아침에 출발할 때 상쾌함이 온몸에 퍼진다. 저 멀리 사람 사는 모습에서, 들에서 힘들게 일하는 늙은 농부에게서,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고 지나는 할머니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는다. 무너지고 있는 폐가에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으면 머리가 텅 비워지고 오로지 걷는 데 집중하면서 본능이 되살아난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서 잘까, 어디서 쉴까. 평소에 관심도 없던 것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오감도 열린다. 풀 향기와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 파아란 하늘과 푸르른 나무와 숲과 들에서 자라는 작물에서 생명의 숨결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움이 온몸과 마음에 깊이 파고든다. 이 맛에 길을 떠난다.
오늘 넘은 어석재는 경사는 급하지 않으나 산자락을 따라 길이 휘어져 있다. 이런 길이 참 좋다.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뒤편에서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짐승 소리가 들린다. 한적한 고갯마루다 보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금은 긴장이 된다. 그래도 쉬어야겠기에 자리를 뜨고 싶지 않다.
내일은 창원시에 들어간다. 이제 부산까지는 공업단지가 이어져서 한적한 길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