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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봉하마을 - 69화

김해 진영

by 조성현

다시 찾은 봉하마을 / 김해 진영


횡단 15일 차(5월 18일)

창원역~진영읍~봉하마을 21km / 누계 374km


어제 마산 진등재수필문학회원 분들과 늦게까지 술과 토론이 이어졌지만, 오늘 걷는 데는 지장이 없다. 내가 체력이 강해서도 아니고, 술이 세기 때문도 아니다. 걸으면 강해진다.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걷는 도중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자주 지나친다. 서울이나 어디나 많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이고, 14%가 넘으면 고령사회다. 우리나라도 2025년이 되면 초고령사회인 20%에 달한다. 이미 노인사회가 되고 있다. 어디를 가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성업 중이다. 노인들 누구나 집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대다수 노인은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어느 요양병원 옆을 지날 때였다. 환자복을 있은 할아버지 한 분이 휠체어에 탄 채 홀로 그늘에 앉아 계시기에 지나며 “안녕하세요” 큰소리로 인사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드리는 인사를 받고 이내 고맙다고 하셨다. 순간 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하면서 동시에 할아버지께 모자 벗고 넙죽 절을 했다. 몇 걸음 지나 그 할아버지의 외로움이 절절히 내 가슴을 쳤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얼마나 오랜만에 받아본 밝은 인사였기에 그러셨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 했다. 점점 더 살기 힘든 요즘, 요양병원에 입원한 부모를 자주 찾지 않는다고 누가 흉을 볼 수 있을까. 그 할아버지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만, 인사성이 밝으셔서 나에게 고맙다 하셨을지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다시 찾은 봉하마을>


몇 년 전 회사 퇴직 후 내 사업을 하다 방랑기가 도져 사업장을 아내에게 맡기고 배낭 하나 둘러메고 여기저기 쏘다녔다. 2009년 5월 하순에도 제주에서 여수로 나와 전주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 했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봉하마을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눈물과 함께 인간적 분노가 있었고, 가식이 적어 보였다. 정파적 편향성이 적은 나에게 그는 우리네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때 사람 냄새가 그리워 여수에서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었다.


오늘 걸을 거리를 21km로 짧게 잡았다. 봉하마을에서 머물 시간을 생각해서다. 걷다 보면 21km나 25km나 힘든 건 매양 마찬가지다. 진영읍 어느 병원 장례식장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마산에 사는 옛 직장동료이자 수필가 이상은 선생이 날 보러 봉하마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틀 전 함안에 머물 때 아침에 찾아와 밥과 커피를 사주었다. 선생과는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고, 이후 각자의 길을 걷다가 문학판에서 다시 만났으니 더욱 각별하였다. 봉하마을에서 기다리는 선생을 생각해 속도를 높였다. 진영읍에서 봉하마을 가는 길에는 대형트럭이 드나드는 공장이 많다. 흙먼지가 코를 통해 폐부에 깊숙이 들어왔으나 개의치 않고 5km에 달하는 거리를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도로변에 노란 팔랑개비가 줄지어 바람을 맞고 있다. 이제 다 왔다.


몇 달 전 도보여행을 계획하며 봉하마을을 찾으려 한 이유는 비정상이 세상을 지배하고, 약자는 더 힘들어지는 이 세상에서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녔던 그분이 생각나서였다. 봉하마을 방문자 센터 이름이 여민정(與民亭)이다. 그의 대통령 재직 때 청와대 비서동 건물이 여민관(與民館)이었다. 여민은 맹자의 양혜왕 하편에 등장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온 것으로, 통치자가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것, 즉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며칠 있으면 그의 기일이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그의 친구가 대통령이라지만, 친구라 하여 기념행사를 크게 벌이지 않는 것 같다. 그게 그를 위한 일이다. 분향과 참배 후 수년 전 올랐던 부엉이바위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그가 잠들어 있는 묘역을 비추고 있었다.


20170518_095752.jpg 창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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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_113937.jpg 이런 길도 걷고
20170518_114724.jpg 이런 길도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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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_153401.jpg 봉하마을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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