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서 목이 말라 냉커피나 한잔하러 노란색 포장 음식점에 들렀다. 회색 승복을 입은 육십 대 후반의 여성과 사십 대 중반의 아들이 파전과 봉하 쌀막걸리, 냉커피 등속을 파는 가게다. 무슨 이야기 중에 팽목항에서 걸어서 여기 왔다 하니 머리 깎은 주인 보살님이 목이나 축이고 가라며 공짜로 막걸리 한 병을 내온다. 옆 식탁에는 한복을 입고 단아하게 앉아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막걸리를 조금씩 들고 있었다. 주인장이 소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팔순 누이다. 그러고 보니 무척 닮았다.
내 뒷자리에서 혼자 막걸리를 들던 여성이 그 누님을 보며 합석하잔다. 작년에 포항에서 교직을 그만둔 전직 교사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 열성 팬이었다. ‘누님’을 보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보살님도 합류하며 막걸리 빈 병이 늘어났다. 보살 주인장과 여선생의 대화에서도 그분의 치적보다 인간미가 주요 내용이었다. 옛사람들도 길 가다 주막에서 처음 본 길손과 이야기 나누다 같이 한잔 걸쳤다는데 나도 오늘은 그런 셈이었다.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다>
봉하마을 천막 주점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잔할 때였다. 옆좌석에서 혼자 막걸리 마시던 사십 대 초반 사내의 중얼거림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 주인장이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저는 자유한국당 선거 유세원이었어요”라고 힘없이 말하였다. 지지 정당에 예민하던 시기라 나는 바로 “누구를 지지하든 그건 자유이지요”라고 말을 했다.
사내는 두 눈이 퀭하고 초췌해 보이며 마른 체구에 입성도 남루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형 화물트럭 운전사인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유세차량 기사 모집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3백만 원을 준다기에 어느 당인지 묻지도 않고 지원했다. 먹고살 돈이 필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유한국당이란다. 지지 정당이 없으므로 어느 당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금으로 50만 원 받았다. 선거가 끝나고 나머지 250만 원을 받으려 했으나 모집한 업체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역 정당 사무실에 찾아갔다. 당에서는 이미 다 지급했다는 것이다. 중간 소개업체에서 돈을 가지고 도주한 것이다. 회사원도 아니고 그때그때 일해서 먹고 사는 그에게는 당장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도주한 자를 찾을 수 없어 지구당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당에서는 자신들과는 무관하므로 피해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며 선을 그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대선 후보든 유세하며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침을 튀겨가며 열을 올렸다. 정당은 수권이 목표이고, 수권의 목적은 권력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데 있다. 물론 원론적인 말이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정당이라면 자신들을 위해 일하다 피해를 본 억울한 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는 못할지라도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다든지 아니면 어떠한 조치는 해줄 수 있어야 했다. 그 정당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사람들 아닌가. 비록 선거에 졌더라도 그 정도의 도움은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다른 정당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주인장 할머니가 기사에게 봉하마을에서는 잘 곳이 없는데 어디서 잘 건지 물어보니 그는 화물차에서 쪼그리고 잔단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는 그 기사가 안쓰러워 봉하마을 쌀막걸리 한 병과 씹을 것이 있어야 한다며 마른 안줏거리도 챙겨주었다. 여민까지는 못하더라도 손톱만큼의 위민도 외면하는 정치꾼들 그리고 서로 위하는 마음을 나누는 민초들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오늘의 단상>
중간에 쉬면서 내 발을 들여다보았다. 예전에는 앞 볼이 좁고 길쭉한 게 예뻐 보였다. 그러나 지금 보니 참 못생겼다. 약간 마른 듯 길쭉하지만 고운 자태는 간곳없다. 앞 볼이 넓어 둥글넓적하고 두툼한 데다 무지외반증으로 툭 튀어나온 모습이 마치 코끼리 발 같다. 시원치 않은 발목은 부어 있고, 엄지발톱은 변색되었다. 작년 도보여행하며 빠진 양쪽 검지 발톱은 나다 말다가를 반복해 흉측하다. 발과 무릎 통증으로 보행이 부자연스러워 발 여기저기 굳은살이 피어났다. 언제 이렇게 변했나. 이 발은 도보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놈이다. 주물러주고 쓰다듬고 만져주어야 한다. 중요한 발을 너무 혹사했다. 내일은 김해 시내로 들어간다. 이제 여정도 이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