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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오신 구덕산 어르신 - 72화

부산

by 조성현

북에서 오신 구덕산 어르신 / 부산


국토횡단 17일 차(5월 20일 마지막 날)

부산 강서구 김해경전철 평강역~구포대교 낙동강~구덕산~사상구청~부산근대역사관(구 미국문화원)~부산역~초량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22km / 누계 420km


낙동강 구포대교를 건너 부산 북구와 사상구를 지나 남으로 향했다. 종착지 부산역까지 구덕산이 가로막았다. 산을 뚫은 구덕터널이 지름길이지만 차량 통행이 빈번한 2km의 터널을 걸어서 지날 수는 없었다. 지방 터널을 수차례 지났어도 차량이 뜸해서 가능했다. 산을 올라야 했다.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 초입부터 구덕산은 나를 시험했다. 경사가 급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걸어 올랐다. 이 오르막길 옆에도, 그 위에도 사람 사는 집이 있다. 나에게는 힘든 산길이지만, 그곳에 사는 분들에게 이 길은 매일 오르내려야만 하는 삶의 길이다.


경사가 완만해지며 한숨 돌리며 걷던 중이었다. 깨지고 파인 시멘트 산길 한쪽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나도 쉬고 싶어서 인사를 드리고 옆에 앉았다. 서로 나누던 인사말에 이북 사투리가 섞였다. 부산에는 전쟁 중에 북에서 온 피란민이 많다. 이분도 피란민 같았다. 조심히 물어보았다.

“어르신, 혹시 육이오전쟁 때 북에서 피란 오셨습니까?”

“무슨 말이오. 아니요.”

낯선 이가 북에서 왔냐 물어보니 약간 당황하면서 처음에는 아니라 하였다. 아마 본능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제 아버님도 함경남도 고원이 고향인데 전쟁 전에 평양으로 나왔다가 1‧4후퇴 때 이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래전 돌아가셨지요.”

“난 평안도에서 내려왔다오.”

그제야 피란민인 걸 말씀하셨다.


구십을 앞둔 노인이지만 북에서 온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한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TV 화면을 점령하며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하였지만 신청하지 않은 이산가족도 상당수였다. 혹여 북에 두고 온 가족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분단 70년이 넘도록 실향민의 두려움과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은 부산에 피란 내려와서 산을 오르내리며 일해서 먹고살았단다. 지금까지 육십여 년을 이곳 구덕산 자락에서만 살았다 하니 어렵게 지내왔을 것이다. 함께 산을 넘어 버스 종점에서 헤어지며 건강하시라 인사드렸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내 두 손을 꼭 잡았다가 놓으시고 휘청휘청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셨다.


<자갈치시장 곰장어 집 주인 할머니>


모든 일정을 마치자 내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칭찬해주었다. 보상으로 자갈치시장 곰장어 구이를 사주고 싶었다. 부산에 사는 지인이 여럿 있어서 보고도 싶었지만, 토요일 오후에 부담을 주기 싫었다.


복잡한 자갈치시장에는 연탄불 곰장어 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그중 한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뭔 말하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전라도에서 걸어왔다고 하니, 자신은 여수가 고향이고 남편은 광주인데 42년째 이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단다. 소(小) 이상 주문받는데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았다. 주인 할머니는 절반만 주문하라며 푸짐하게 구워주셨다. 시간이 일러서 손님도 없어서 곰장어에 소주 한잔하며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걸음이 불편해 보여 물어보니 관절염과 당뇨가 심하단다.


당료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남편은 도박 중독이 심하여 오랫동안 아내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칠십을 훌쩍 넘긴 남편의 도박이 끝을 보인 건 몇 년 전이었다. 남편은 도박 빚도 자주 졌다. 내가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갚아 주시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도박 사채업자들은 할머니에게 남편 빚을 갚지 않으면 남편을 해치겠다고 자주 협박했다. 폭력배들의 협박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빚을 갚아 주면 다시 도박 빚을 지고, 반복의 연속이었다. 현장에서 남편이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본 아내의 스트레스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급기야 당뇨병에 걸려 고생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했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관절염으로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몸속 병도 만만치 않으나 표정과 말에서 생을 달관한 듯, 보살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님, 몸 생각하셔서 그저 쉬엄쉬엄 장사하세요. 다음에 부산 오면 꼭 들를게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말뿐이었다. (6년 후 부산 곰장어 집에서 이 할머니를 만났고 , 2년 지나서 다시 찾아가서 할머니 이야기가 담긴 책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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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_134945.jpg 구덕산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여기 사는 분들은 매일 이 길을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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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_143712.jpg 구덕산에서 보수동으로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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