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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에서 초량까지 - 73화

부산

by 조성현

팽목에서 초량까지 / 부산


횡단 17일 차(5월 20일 마지막 날)

부산 강서구 김해경전철 평강역~구포대교 낙동강~구덕산~사상구청~부산근대역사관(구 미국문화원)~부산역~초량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22km / 누계 420km


홀로 걸어 국토횡단을 모두 마쳤다. 세월호 참사 3주년이 되는 지난달 4월 16일, 팽목항을 찾았다. 참사 발생 3년이 되도록 팽목항에 가지 않은 나는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도보여행의 출발지를 팽목항으로 정했다. 한반도 아랫녘 국토횡단의 종착지를 부산으로 정했지만, 부산역으로 하기에는 의미가 약했다. 그래! 종착지는 우리 민족의 한이 절절히 서려 있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으로 정하자. 이번 국토횡단은 현대사의 치유되지 않은 아픔에서 시작하여 아픔으로 끝을 내기로 하였다.


일본은 나라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 땅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일본군 성노예로 삼았다. 피눈물 나는 피해 할머니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갑자기 일본에 면죄부 선물을 안겨 주었다. 단돈 100억 원을 받고 불가역적 합의를 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반인륜범죄에 대해 가해자의 범죄 인정과 사과 없이 용서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엄연히 살아 있고 피해자의 동의도 없는데 국가라고 해서 면죄부를 줄 권리는 없다.


일부에서는 일본과의 관계개선 운운하지만, 일본은 독도 야욕을 버리지 않았고, 역사 왜곡도 더욱 노골적이다. 일본과는 기본적으로 관계개선에 한계가 있다. 반인륜범죄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도 우리가 일본의 목줄을 쥐고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나라의 정신과 국익을 단돈 10억 엔, 100억 원에 일본에 팔아먹었다.


일본은 한일합의를 이행하라며 소녀상을 치우라 당당히 요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의 일이라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는 애매한 답만 되풀이했다. 피해 할머니들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게 한밤중 도둑질하듯 한일합의에 도장 찍었으니,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정파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나야 일개 범부이지만 소녀상을 찾고 싶었다.


몇십 미터 앞에 소녀상이 보였다. 갑자기 내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며 후들거렸다. 가슴도 두근거렸다. 작년 국토종단 하며 강원도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도, 3년 전 목포에서 출발하여 서울시청 광장에 도착했을 때도 그렇지 않았다. 굳게 다문 입, 고무신을 벗은 맨발의 소녀는 그렇게 일본영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국가의 공식적 인정과 사죄와 반성이었다.


내가 부산 소녀상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반경. 하얀 웃옷을 단복으로 입은 십여 명의 성인 합창대가 소녀상 옆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고향의 봄>을 시작으로 여러 곡을 불렀다. 합창을 듣는 사람들은 소녀상 지킴이 자원봉사자 몇 분과 나 같은 사람 몇몇뿐이지만 그들은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연습하여 곱디고운 목소리로 ‘소녀’들의 한을 달랬다.


소녀상 바로 옆에서 지킴이 자원봉사를 하는 몇 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디서 왔냐 묻기에 팽목에서 걸어왔다 하니 울컥하시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나야말로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 그분들은 차량 통행이 잦은 초량 대로변에서 매연을 마셔가며 봉사하고 있다. 가족 단위로도 소녀상을 찾는다. 아이를 소녀상 옆 의자에 앉히고 사진을 찍고, 아이와 함께 소녀상을 유심히 바라본다. 소녀상은 반인륜범죄에 대한 상징이다. 세월호 유가족도, 위안부 할머니들도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상규명과 가해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했을 뿐이다. 정치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언제가 되어야 비정상이 정상이 될까.


(그후 부산의 소녀상은 여러차례 테러를 당했다. 모두 한국인들이 저지른 만행이었다. 지금은 경찰의 접이식 바리케이드가 소녀상을 보호하고 있지만,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게 되었다. 동일 주제로 세계 최장기 집회 횟수를 기록한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를 들고 "위안부는 매춘부다"를 외치는 무리가 있다. 모두 대한민국 국적의 한국인이지만, 그들은 진짜 한국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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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_154812.jpg 보수동 책방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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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_162603.jpg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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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4_090220.jpg 한국인들의 소녀상 테러를 막기 위한 경찰의 바리케이드. 그들은 국적만 대한민국 아닐까? (2025년 1월 촬영)
20250114_090127.jpg 소녀는 높디 높은 일본영사관 벽을 바라보고 있다
20250114_090645.jpg 일본영사관(2025년 1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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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_190725.jpg 자갈치시장 여수정오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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