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등교하는 첫날, 돌봄 교실까지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학교 정문에서 기다렸다. 봄이 진짜로 온 것이 비가 내려도 찬 기운 보단 포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저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이나 또 자기 등짝만 한 책가방을 메고 데리러 온 보호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의 긴장된 마음을 생각하면 입학 시즌이 봄인 것이 참 다행이다.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서 생활했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돌봄 교실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만나자마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아이의 얼굴을 보니 허옇게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 마음만 같아선 12월 말에 생일인 이 아직 아기인 녀석을 일 년만 더 데리고 있다가 학교에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4일만 더 기다렸음 1월생인데 이미 열흘을 기다린 터라 출산을 더 미룰 순 없었다.
생일 늦은 아이 때문에 아이가 뭘 해도 늘 ‘너무 빠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치원엘 입학할 때도, 처음 한글을 읽을 때도, 줄넘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도 ‘좀 더 있다 해도 되는데…’ 한다. 겨울에 태어나서 나자마자 한국 나이로 두 살이 된 녀석. 녀석의 일 년은 늘 도둑맞은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재잘재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엄마 점심 대박 맛있었어. 학교 김치는 어린이집보다 안 매워. 치킨 나왔는데 다 먹었어. 왠 줄 알아? 선생님이 고기는 다 먹으래.”
학교에서 엄마 보고 싶어서 울었다는 것 치고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신이 가득 나있다. 아침 등굣길 종이가방 한가득 신학기 준비물을 보내면서 저걸 잘 들고 갈 수나 있을까, 엄마가 가서 사물함에 잘 넣어줬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루종일 걱정했는데 아이가 하는 말, “사물함 정리하는 거 완전 재밌었어!”. 이제 엄마의 손을 저만치나 떠난 아들이다. 초등학교에 대한 내 생생한 첫 기억은 전학 간 2학년 어느 날, 사물함에 휴지가 없어서 당황했는데 옆 친구가 빌려줘서 난감한 상황을 겨우 모면했던 기억이다. 나의 기억 때문에 그런 불안한 마음은 겪게 해주고 싶지 않은데, 그것도 이제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학교에 간 이상, 난감하고 어려운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나의 아이도 이젠 스스로 배워나갈 것이다. 조금 더 이해심 있는 선생님이 계시길, 응급상황에 휴지를 빌려 줄 친절한 친구를 만날 수 있길.
“엄마 오늘 00이도 만나고, 00이도 만났어.”
어린이집 친구들하고 다 반이 나뉘었는데, 첫날인 오늘 족히 열 명은 마주쳤다는 것 같다. 급식실에서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마주쳤다길래, “급식실이 커?” 하고 물어보니, “엄~~청 커. 형들도 많이 봤어.” 한다. “형들이 많아?” 했더니 “엄청 많지!” 들뜬 표정을 한 아이의 그런 대답들을 들으며 나는 왠지 해리포터 1편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호그와트에 처음 간 해리가 만난 엄청난 새로운 세상, 커다란 연회장, 수많은 어리바리한 신입생들, 그리고 멋진 선배들... 새삼, 학교에 간다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처음으로 큰 세상을 만나는 경험,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앉아있을 친구들과 이미 앞서 있는 형 누나들. 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와닿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두 달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도심에서 벗어난 작은 학교에 보낼지 큰 학교에 보낼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자유로운 스페이스가 있는 환경에 보내고 싶어서 한 학년에 열명 미만인 작은 학교도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학교 박람회도 다니고 몇 군데 방문도 해보면서 오래 고민했는데, 결국 집에서 5분 거리 큰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건 여러 이유 중에서도 엄마의 사심이 컸음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동안 아이와 많이 못 보낸 시간을 많이 함께 하고 싶어서이다. 아이와 걸어서 등하교하고 방과 후에도 동생 없이 오붓한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싶어서. 그래놓고 막상 신입생 200명이 넘고 전교생 천 명이 넘는 학교에서 이 작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입학식 첫날 마음이 걱정이 많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학교에 다녀와서 흥미에 찬 아이의 표정이, 보고 배우고 도전할 것이 많아 흥분된 아이의 마음이, 나에게도 다시 설렘이 된다. 아직 앳된 해리포터와 친구들의 모험과 성장을 함께 두근거리고 맘 졸이며 읽으면서 함께 자라난 나처럼, 내 아이도 이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갈 때가 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 항상 어리고 덜 된 아이는 자기 세상에선 그렇지 않다. 새롭게 도전해 보는 일들과 쌓여가는 낯선 경험들이 아이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엄마는 뭘 하든 늦은 생일을 핑계 삼아 천천히 크라고 마음속 주문을 외지만 아이의 세상은 엄마의 마음보다 이미 커져 있다. 아침 독서시간에 읽을 책 두 권을 고심해서 골라 필통과 함께 넣어 둔 아이의 책가방을 살며시 열어본다. 아이가 성큼성큼 걸어 나간 자리가 매번 아쉬운 엄마와 달리 아이는 “또 빨리 학교 가고 싶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