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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도니뇨 Nov 07. 2024

조카 그리고 귀띔('24.09)

너의 탄생을 축하하며

 조카가 태어났습니다. 언젠가 외삼촌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정말 외삼촌이 되니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추석까지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명절. 이 며칠간의 머무름을 기회 삼아 매일 누나네 집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정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작기도 작거니와 아직은 목도 스스로 가누지 못하기에 전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모습조차 사랑스럽습니다. 맘마도 먹여보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트림도 시켜봅니다. 조막만 한 손에 제 손가락을 대어 봅니다. 꼭 움켜잡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습니다. 누나에게 들어보니 평소에는 잘 웃다가도 이유 없이 막 울어버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동안 약간 칭얼거림은 있더라고 크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덤벙거려도 밖에만 나가면 알아서 잘 해버리는 외가의 재주를 물려받았나 봅니다. 어서 빨리 외삼촌에게 엄마 몰래 햄버거를 사달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수제버거집에 데려가 패티가 두 장씩 들어간 햄버거를 사주고만 싶습니다. 

 

 명절 동안 잘 쉬었습니다. 정말 잘 쉬었습니다. 서울에서 창원으로 출발하며 서울역 짐 보관함에 저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며칠 동안 전부 맡겼습니다. 사실 명절이 아니고서야 아무리 주말이나 휴가 날이라고 하여도 마음이 완벽하게 편하지는 않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회사 전화 혹은 현장 근처 민원 전화로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명절 동안은 이런 불청객이 없을 것임을 알아서인지 너무 마음이 편했습니다. 늦잠도 자고 운동도 편히 가고 친구들과 목욕도 시원하게 다녀왔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다시 서울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조카를 보러 갑니다. 명절에도 출근을 하느라 고생하신 자형과 모두 함께 저녁을 먹습니다. 이번에도 의젓한 모범생 조카는 다들 편하게 식사하시라고 밥 먹는 한 시간 동안 혼자 잘 놀아 줍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차 서울 갈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마음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행복할 때 그저 행복하면 좋겠는데, 행복한 순간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떠올리게 되나 봅니다. 서울역에 맡긴 짐을 다시 찾으러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옵니다. 

 저기 누워서 놀고 있는 조카를 바라봅니다.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걱정도 하고 그 모든 것을 잘 해내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응원합니다. 제가 대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부디 저 아가는 제가 겪는 어려움과 아픔보다는 덜 겪길 기도합니다. 두 번 힘들 거 한 번만 힘들고 한 번 속상할 거 가급적이면 내 조카 속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 개인을 성장시키는 것은 분명하나 그런 아픔 없이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아기에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줘야 하나 생각해 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으쌰 으쌰 하라고 파이팅 하라고 말해줘야 하나 생각합니다.

 

 여름은 제게 쉽지 않은 계절입니다. 본디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대체로 한 번은 아픕니다. 최근 몇 년간의 여름은 감기로 아팠습니다. 겨울에도 잘 걸리지 않는 감기인데 이상하게 여름에 걸렸습니다. 여름 감기가 힘든 이유는 기침도 나오고 콧물도 나오는데 몸은 덥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차를 마셔야 하는데 너무 더우니 자꾸만 차가운 음료가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3년 정도 여름 감기를 앓았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여름 감기를 앓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다행히 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도 제게 쉽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밥벌이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매월 느끼는 어려움이 달라졌는데 이번 여름은 낯선 일들이 많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많아서 더 힘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여름이 정신적으로 고되었다 보니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조카에게 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누가 내게 밥벌이하는 것이 녹록지 않을 것일이라고, 눈물 나는 날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었으면 덜 힘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생각해 보면 그런 귀띔은 모두가 해주었습니다. 부모님, 누나, 입사에 도움을 주신 분 그리고 선생님들도 알려주셨습니다. 마음을 제법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런 조언을 제가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더 힘들었던 것입니다. 제게 귀띔해 주신 분들이 제 어려움이 굉장히 크고 또 험난하길 바라실 분들이 아닙니다. 가능한 저의 고난은 작길 기도하실 분들입니다. 제게 고민거리가 하나 덜어지길 바라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제가 감당해야 할 여러 어려움이 자연스럽게 제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처음 겪는 것이라 제가 더 힘들었던 것입니다. 말씀해 주신 분도 제게 찾아온 어려움도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저까지 그 누구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냥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들은 제가 막을 수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 저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기 누워있는 아가에게 일어날 일들을 제가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아니 막으면 안됩니다. 뛰다가 넘어져도 보고 미끄러지기도 해야 합니다. 아파도 보고 눈물도 흘려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하늘이 아끼고 사랑한다면 보다 쓸쓸하고 외로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겪고 나면 분명 조금 더 성장해있는 우리 조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는 이 어려움을 충분히 겪고 나면 성장한 저도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 고생 많이 한 저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약간의 보상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나 제법 달콤한 보상으로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저 아가가 언젠가 힘들다고 어렵다고 눈물 난다고 제게 투정 부리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이 지나갔을 때 언제나 제게는 아가 같을 조카에게 패티가 두 장 든 햄버거든 두툼한 스테이크든 달콤한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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