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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도니뇨 Nov 09. 2024

상념('23.06)

삶의 균형을 찾아

 하루는 아침부터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알람 소리에 비록 놀랐지만, 깊이 잔 덕분에 몸이 가벼웠습니다. 출근길에 읽는 책도 어찌나 재밌는지 하마터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사진으로 남겨둡니다. 친한 친구들과의 톡 방에 책 사진을 올리며 그들이 읽든 읽지 않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또 어떤 하루는 시작부터 성가시는 하루였습니다. 새벽에 몇 번이나 깨 시간을 확인합니다. 자연스럽게 기상까지 얼마나 더 남았는지 계산합니다. 한두 시간 남은 것도 속상한데 20분 남을 때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잠들기에는 애매한데 그렇다고 일어나기에는 손해 보는 기분입니다. 그런 날은 지하철에서 읽는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잠이 부족했던 터라 눈이 건조하고 잠이 몰려옵니다. 책을 좀 읽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세상의 재미난 일들은 대체로 제가 자는 동안 일어난다는데 밤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인터넷을 들어가 봅니다. 몇 분 뒤적거리다 보니 휴대폰을 갖고 노는 것도 흥미가 떨어집니다. 출근이고 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파묻혀 잠들고 싶습니다.


 어느 날은 마음의 여유가 흘러넘칩니다. 대기만성이라고 얼마나 큰 그릇이 되려고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회사에 합격할 필요도 없고 딱 한 곳에만 합격하면 됩니다. 마음 졸인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마음 편하게 있어 봅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물론 나도 어딘가에 고용이 될 것이고 직장을 갖게 되겠지만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이 불안감을 유발합니다. 내가 가진 정량적 능력이 너무 부족한지 걱정되고 만약 다음 시즌으로 넘어간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예민하고 걱정되는 날에는 괜히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바닷가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참 평화롭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 평온함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차차 시선을 해안가로 거두어들입니다. 큰 파도가 해안가를 덮칩니다. 큰 파도는 많은 양의 바닷물과 함께 다가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 키보다 조금 높은 선반 위의 젤리를 잡으려는 아이처럼 바닷물은 제 몸을 스스로 던지며 모래사장으로 다가옵니다. 양껏 앞으로 가지 못 한 바닷물들이 다시금 기를 모아 모래사장을 습격하기 위해 물러납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법칙을 알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다음 주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나 봅니다. 이번에도 제법 많은 양의 바닷물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모래사장을 향해 다가옵니다. 애석하게도 의기양양하던 두 번째 파도는 앞전의 아쉬움을 삼키고 다시 힘을 모으러 가던 바닷물의 존재를 몰랐나 봅니다. 아무리 그들이 보다 많은 물과 보다 강한 의지로 모래사장을 향해 달리더라도 앞선 바닷물이 뜻밖의 장애물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그들도 처음의 의지에 한참 못 미치는 곳까지 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를 모릅니다. 또 한 번 결의를 다지며 한 발 후퇴합니다. 그러다 세 번째 파도와 만나버립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가오는 세 번째 파도는 바닷물의 양이 적습니다. 안 그래도 적은 양의 바닷물이 앞의 바닷물과 만나니까 앞전의 바닷물이 닿은 곳까지도 미치지 못합니다. 다시 조금 더 큰 파도가 오지만 적은 양의 방해물이 있어 그 크기가 상쇄되어 버립니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의 끝없는 반복은 적당한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적당한 파도.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슬픔입니다.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깊어진 감정의 골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이 저를 잠식해 옵니다. 먹먹한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날 때도 있고 아무것도 못 할 만큼 무기력한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슬픔 뒤에는 작은 기쁨들이 찾아옵니다. 이 역시 다양한 곳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 훅 다가옵니다. 큰 슬픔은 작은 기쁨으로 중화되나 봅니다. 그렇게 슬프고 힘들더니 또 살아갑니다. 길 가다 본 초록 잎이,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의 뭉게구름이,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뒷모습이 제게 힘을 줍니다. 


 Life is all about balance. 인생지사 새옹지마. 이런 말들을 좋아합니다. 치우치기 보다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큰 파도 뒤에는 작은 파도가 올 것이라는 것. 큰 슬픔이 와도 머지않아 기쁨이 또 올 것이라는 것. 그렇기에 너무 슬퍼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는 별개로 사람 마음이 참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근심으로 가득 찬 하루가 있습니다.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허우적대는 날들도 있습니다. 앎과는 별개로 행동하는 제게 작은 변명의 여지를 남겨둡니다. 고진감래처럼 힘든 순간이 지나면 괜찮은 시기가 오겠지만 힘들 때 열심히 힘들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깊이 슬퍼했기에 찾아올 행복을 행복이라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든 순간이 있기에 그 순간이 지나고 평온한 시기가 왔을 때 그 평온함의 값어치를 알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의 균형을 맞춥니다. 변명이라기보다는 어쩌면 'Life is all about balance'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살아가며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추신 : 이렇게 편지를 쓰고 보니 어찌 끝없는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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