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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껴안으면서 다시 찾아지는 젊음

리프레시 ep5. 메멘토 모리

by 황태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 할머니가 보였다. 샛노란색 재킷을 입고 휠체어 위에 앉아계셨던 할머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모습이셨다. 생명의 빛깔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와 대비되는 생명력 가득한 노란빛의 겉옷은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할머니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셨고, 말씀을 하지 못하셨으며 표정을 짓지도 못하셨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셨다. 다만 말간 아기의 눈동자와는 달리 그 눈동자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할머니의 딸과 손주는 할머니가 케이크를 한 입, 두 입 드시면 "맛있지 엄마?" 하며 환히 웃었다.


할머니는 웃음 짓는 딸과 손주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시다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젖비린내 나는 풍경에 눈을 돌리셨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사랑하는 이들과 그들이 속한 풍경을 한 폭의 어우러진 그림을 멀리서 보듯 눈에 담으셨다. 그 모습은 자신의 머지않은 죽음의 날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식과 손주와 언제 또 이렇게 날 좋은 날 야외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삶에 대한 욕심과 살아있는 것에 대한 질투를 초월한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얼굴이었다.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건방지게도 나의 젊음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젊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음은 죽음을 껴안으면서 다시 찾아지는 젊음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병보다 더 타기할 것은 없다. 그것은 죽음을 치유하는 약이다. 병은 죽음을 준비해주고 있는 것이다. 병은 죽음에 대한 수련인데 그 수련의 첫 단계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 약한 연민의 감정이다. 사람이란 송두리째 죽어버리게 마련이라는 확신을 기피하려는 인간의 그 엄청난 노력을 병은 도와준다.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나는 나의 죽음을 떠올렸고, 그것은 실제로 실현될 것이며 머지않았음을 깨달았다. 또한 나의 몸에 넘치는 생명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혈관을 타고 빠르게 고동치는 피의 움직임이 터질 듯이 느껴졌다. 손과 발을 다리를 팔을 움직일 때의 거리낌 없는 힘이 느껴졌다. 오장육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전신을 감싸는 가죽의 팽팽함이 느껴졌다. 가닥가닥 한 올의 희어짐 없이 지독히도 새카만 머리카락이 보였다.


나무에 달린 갈색 빛의 움츠러든 나뭇잎이 보였다. 그 나뭇잎의 자세는 단지 초연했다. 옆의 새파란 나뭇잎들을 질투할 법도 한데 그저 자신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허락된 날까지 가지에 달려있을 뿐이었다. 주위의 새파란 나뭇잎들은 그저 아무것도 몰랐다. 신생의 철없이 가벼운 흘러임을 보여줄 뿐이었다.


또렷이 의식하는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 그것은 곧 나와 세계 사이를 갈라놓는 거리를 좁히는 것이며 영원히 잃어버린 한 세계의 열광적인 이미지들을 분명하게 의식하면서 기쁨도 없이 완성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할머니의 눈빛이 다시금 떠올랐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도 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당당히 응시하는 자의 초연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죽음과 반대되는 젊음의 한가운데 있는 나는 더더욱 죽음을 알아채야 한다. 할머니를 바라보고 나의 젊음을 의식하게 된 것처럼, 내가 눈치채고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젊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죽음을 정정당당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아니 바라보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나의 죽음을 껴안으면서 나의 젊음을 회복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올린 가치관과 신념을 다 보잘것없다는 듯이 내려놓은 채 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삶의 순진하고도 무구함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나의 젊음을 시시때때로 회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삶의 덧없음과 스쳐 지나감을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구해야 한다.


(중략) 나는 한 일생의 종말에 가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면, 그 같은 정대면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까지 자기의 것이라고 지니고 있었던 몇 가지 안 되는 생각 따위는 부정해 버리고 자신의 운명과 정면 대좌한 고대인들의 시선 속에서 빛나고 있는 저 무구와 진실을 다시 찾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젊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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