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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고민

리프레시 ep.4 고민마다 무게가 다를 필요가 있을까.

by 황태

리프레시 휴가 기간 동안 매일 카페를 출석하고 있다. 예전에 카페에서 일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꿈꿨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매일 카페에서 오래도록 글을 쓰는 것은 힘에 부쳤다. 집중력이 금세 고갈되곤 했으니까. 새삼 프리랜서 분들을 다시 존경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경험해 보았으니까. 9일의 시간을 바닥에 내리꽂았으니까. 만족한다.


글을 쓰다가 마침 배가 너무 아픈 날이라 집중도 잘 안되고, 걸칠 옷을 챙겨 오지 않은 탓에 추워서 야외 좌석으로 나갔다. 언제까지나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따뜻한 바람을 한껏 만끽하며 책을 읽고 싶었다. 흔들 그네 좌석만이 남아있어서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좌우가 소란해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3악장을 들으며 책을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내 무릎 위에서 수군수군 거리고 잔잔한 바람이 내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이 순간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글자들이 여름빛에 말갛게 번졌다. 그래서 책을 내려놓고 바람의 흔들거림에 몸을 맡겼다. 바람이 나를 들어 올린 채 살랑살랑 다독여 주는 이 순간을 언제 다시 경험해 볼 수 있을까.


눈을 감으면 임윤찬의 연주가 눈물 고이게 했고(눈물이 나는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어떤 것이다.), 눈을 뜨면 수백만 연녹빛의 반사가 눈을 찔러대 눈물이 고였다. 눈을 감을 수도 뜰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행복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세상은 촉촉한 물빛이었다.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나를 괴롭혔는지 떠올려 보았다. 어떤 것을 포기할지 얻을지 골라야 하는 고민도 있었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차선책을 골라야 하는 고민도 있었고, 두 선택지 모두 가슴 아픈 고민도 있었다. 세상사와 결부된 고민은 왜 이토록 무거울까. 가슴이 옥죄어오듯 답답해질까. 그러다 고민에 무슨 무게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생각하게 됐다.

고민이라는 뜻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우는 것이다. 괴로움을 동반한 채 애가 탔던 지난날들이었다. 애가 타는 이유는 급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무거울수록 애가 타고 그 때문에 괴로워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민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무게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나의 사소하지만 엄중했던 고민이 떠올랐다. 그 고민이 무겁지 않았고 괴롭지 않았고 애가 타지 않았던 이유는 어찌 되어도 좋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나는 행복하다는 것에 확신이 있었으니까. 이 순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나는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임을 알았으니까.


그렇다면 모든 고민이 이러해도 되지 않을까. 마음속에 괴로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급한 마음에 애타하지 않은 채 흔들 그네 위의 고민처럼 어떻게 흘러가던지 나의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에 마음이 괴로워질때마다 흔들 그네 위의 엄중한 고민을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알베르 카뮈의 마음속 여름처럼, 김화영의 지중해처럼 고민의 순간마다 이 흔들 그네 위의 고민을 떠올려보자고 홀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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