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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자신만만한 덕목

리프레시 ep.2 불행과 정신에 대한 고찰

by 황태

불행에 중독이 되었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중독의 뜻 중에는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다.'라는 뜻이 있다. 불행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행만을 탐지하여 젖어버리게 되는 듯하다. 마치 슬픈 노래가 주는 감성에 젖어 중독되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행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에 한 번이라도 젖게 되는 순간 개인의 정신은 힘을 잃어 몰아치는 근심과 걱정에 홀로 서지 못하게 된다. 가장 쉬운 예로 불행을 겪을 때 우리는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해내지 못하며 심지어 입맛을 잃기도 한다.


우리는 불행에서 파생되는 무한한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불행 속에 젖어있는 사람에게 행복은 스쳐 지나가버리는 소소한 것에 불과하다. 불행한 자에게 내리쬐는 행복한 볕은 그저 햇빛일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행복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행복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행의 상황이 다가왔을 때 이것이 통상적인 불행이라고 판단된다고 하여 잠식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원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불행이 오히려 내가 선택하지 못했을 나에게 다가온 행복이었을 수도 있고, 행복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불행의 상황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확고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신의 확고한 태도란 감성이나 상황에 치우치지 않는 우직한 기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직한 기둥인 정신의 힘이 있어야 불행 속에서도 파생될 고통을 진정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침착하게 파악해 행복을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니체의 자신만만한 정신의 덕목에는 성격의 힘, 고결한 취향, 이 '세계', 고전적인 행복, 확고한 긍지, 현인의 냉정한 검박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불행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삶의 짐이 무겁게 느껴질 때 고향으로 떠났다.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연약한 꽃의 힘을 발견하러 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힘은 정신의 자신만만한 덕목 중 하나인 성격의 힘이다. 이 세계의 겨울 속에서 열매를 준비해 주는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힘이다.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서 결론적으로 우리에게는 정신의 힘이 필요하다. 나에게 적합한 자신만만한 정신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 나의 정신의 힘을 기르기 위한 덕목은 무엇일지 하나씩 대입하여 생각해 본다.


먼저 냉정한 검박이다.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자칫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영위해 나가야만 정신의 힘을 기를 수 있다.

또한 나를 믿어주는 것은 나밖에 없기 때문에 어려운 길을 걸어가려는 내게 확고한 긍지란 꼭 필요한 것이다. 고전적인 행복을 나는 카뮈가 말하는 행복인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무의미한 인생은 내가 의미를 찾아야만 의미 있어진다. 나 스스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큼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결한 취향이다. 취향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것을 알아야만 의미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취향 중에서도 고결한 취향이라니. 무언가 남이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며 또한 성스럽기까지 한 나의 취향이기에, 기대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성격의 힘은 쉼 없는 긍정이다. 끊임없는 긍정만이 나를 온전히 서 있을 수 있게 하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계'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나의 정신의 덕목을 쌓아가게 하고 힘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과 이 돌의 아름다운 절규가 없다면 모든 것이 다 무용하다는 것을 그 풍경은 내게 확신시켜 준다. 세계는 아름답다. (중략) 그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햇살에 따뜻해진 돌, 혹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흠씬 키가 크듯 위로 솟구치듯 시프레나무, 바로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금 그어주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이다. 유일한 세계란 다름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한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우리는 우리의 인간조건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인간조건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순 속에 놓여 있지만 그 모순을 거부해야 하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책무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무한한 고통을 진정시켜 줄 몇 가지 공식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중략) 이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초인적인 책무다. 그러나 인간들이 오래 걸려서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책무를 흔히 초인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고, 비록 힘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하여 어떤 사상이나 안락의 모습을 갖춘다 할지라도 정신에 관해서는 확고한 태도를 갖도록 하자. (중략)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연약한 눈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황홀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꽃은 열매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상징이 아니다. 우리는 상징들로 우리의 행복을 획득할 수 없다. 그러자면 그보다 더 진지한 것이 필요하다. 내 말은 다만, 불행으로 온통 가득하기만 한 이 유럽땅에서 때때로 삶의 짐이 너무 무겁게 여겨질 때면, 나는 그토록 많은 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저 빛나는 고장들로 되돌아가본다는 뜻이다. (중략) 그 고장이 모범으로 보여주는 명상은 이리하여 나에게, 우리가 정신을 구하고자 한다면 정신의 비명에 허덕이는 특질을 잊어버리고 그것의 힘과 위세를 더욱 북돋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중략) 그러나 정신의 자신만만한 덕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바로 그 니체가 무거움의 정신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 덕목들을 열거한 바 있다. 그가 생각할 때 그것은 성격의 힘, 고결한 취향, 이 '세계', 고전적인 행복, 확고한 긍지, 현인의 냉정한 검박이다. (중략) 모든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성격의 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세계의 겨울 속에서 열매를 준비해 주는 것은 바로 그 힘인 것이다.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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