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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황홀함

살아있는 것에 대한 황홀함

by 황태


작년 겨울부터 운동을 잊고 살았다. 운동을 하면 큰일 날 사람인 것처럼 의식적으로 운동을 회피했다. 운동할 시간을 아껴서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더 피하고 싶어졌다. 그냥 덜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는 유독 온몸이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닌 기분. 내가 내 몸을 움직이는데 버겁거나 불편한 느낌이 든다는 게 사뭇 황당했다. 그래서 어제 점심시간에 여의도 공원에서 한 시간가량 걸었다.


흙으로 이루어진 길이 있길래 그 길 위를 따라 계속 돌았다. 아스팔트의 척박한 땅은 수평의 위치에서 내 발과 교감하지 못하고 밀어내듯 걷게 한다. 하지만 흙길은 대지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어 내 발과 어우러졌다. 대지가 올라가면 내 발도 올라갔고 대지가 내려가면 내 발도 내려갔다.



땅 위를 한 바퀴, 두 바퀴 걸으면 걸을수록 혈관을 따라 땅속의 파릇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퍼져나간 땅의 기운은 내 몸을 훈훈하게 데웠고 그 열기로 하나 된 내 몸은 그제야 하나의 연결된 유기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드디어 나의 몸을 되찾았다.


그동안의 내 주 자세는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있으면 나의 정신과 몸이 분리되어 정신만이 엎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그저 나의 정신이 나의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나의 몸은 나의 정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잊게 된다. 이것이 나의 몸이었음을.


공원을 한 시간쯤 걷다 보니 단화를 신은 발이 서서히 아파왔다. 그 저릿한 통증은 나에게도 다리가 있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이 생생한 감각을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싶어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거부할 뻔했지만 몸에 지지 않고 몸을 이끌었다.



오전 5시 30분, 밖에 나오니 비가 내린 탓에 뽀얀 안개가 가득했다. 라일락 향기가 촉촉한 안개를 만나 더욱 번졌다. 녹진하기까지 한 그 냄새에 취해 살짝 몽롱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뛰는 것은 더욱 나의 몸에 집중하게 했다.


땅을 박차는 힘은 발가락 끝부터 발목을 지나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허벅지에 실렸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엉덩이와 옆구리 살의 감각이 느껴졌다. 코로 호흡하지 못하고 입으로 호흡한 탓에 라일락 향 안개가 함북 입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나의 해골이 환기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묵혀있던 생각의 찌꺼기들이 녹진한 공기에 들러붙어 떨어져 나갔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한계에 마주했을 때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움직였고, 몸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생각인가.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황홀감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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